[CoverStory] 폐업한 후 집 담보로 ‘기업대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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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폐업해 사업체가 없는데도 전 오너인 이모씨는 D금융회사에서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기업자금 대출을 받았다. 아예 자격 조건이 안 되는데도 대출을 받은 것이다.

 ◆부동산 자금으로 흘러간 중기대출=금융감독원은 6월 13일부터 한 달간 30개 금융회사(은행 9개, 상호저축은행 6개, 단위조합 12개, 캐피털사 3개)를 대상으로 중소기업대출 취급 실태를 점검했다. 금감원 김대평 부원장보는 19일 “사업자금으로 중기대출을 받은 후 실제로는 부동산을 사들이는 등 다른 용도로 유용한 사례가 992건에 1541억원에 달했다”고 말했다.

 점검 대상 30개 중 유용 사례가 드러나지 않은 곳은 SC제일은행뿐이었다. 은행이 92건(148억원), 저축은행이 190건(286억원), 단위조합이 627건(972억원), 캐피털사가 83건(135억원)의 대출을 부당 취급했다. 휴업 중이거나 폐업한 업체에 대출해 준 사례도 149건(242억원)이나 됐다.

 금감원은 이번에 적발된 용도 외 유용 대출은 모두 회수할 계획이다. 대출을 취급한 임직원은 문책하고 용도 외 유용 사례가 많이 적발된 단위조합에 대해서는 관계부처와 협의해 제재할 방침이다.

 ◆부동산 외엔 투자할 곳이 없다?=중소기업들이 운용 자금으로 쓰겠다며 대출받은 돈으로 부동산 투자에 나서는 것은 엄연한 은행법 위반이지만, 이를 두고 기업주의 도덕성만 탓하기엔 구조적인 문제들도 널려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금융회사들이 이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 중소 제조업체에 대출을 해 줬다가 회수가 안 돼 피해를 본 경험 때문에 최근 금융회사들은 부동산 임대업체 같은 비제조업에 대출을 몰아주고 있다. 애초에 기업 운용 자금으로 쓰이기 어려운 구조라는 얘기다. 실제 전체 중소기업 대출 중 3월 현재 부동산임대업 등 비제조업 비중은 62.8%를 차지할 정도다. 그중 부동산 관련 업종 비중은 2005년 말 13.1%에서 3월 현재 15.2%로 꾸준히 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은행들이 수익성만을 앞세워 대출을 쉽게 회수할 수 있는 비제조업 중소업체 대출에 치중하고 있다”며 “그 바람에 정작 중기대출이 가장 많이 필요한 제조업체는 여전히 자금사정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대출마저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식품 관련 공장을 운영하는 홍모씨는 “은행들이 정작 돈이 필요한 곳에는 빌려주지 않고 돈이 필요 없는 곳에 좋은 조건으로 대출해 준다”며 “돈이 생긴 업주 입장에선 딴생각을 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안혜리 기자, 김은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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