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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기자의현문우답] 하나님과 나의 거리는 얼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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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주에 옥한흠(69·사랑의교회 원로) 목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8일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감동적인 설교를 하셨던 분이죠. 옥 목사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목사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하나님은 가장 큰 자를 가장 작게 보고, 가장 작은 자를 가장 크게 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설 때였죠. 옥 목사는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과의 거리 차이’라고 본다”고 말이죠. 참 의미심장했습니다. 나와 하나님, 그 사이의 간격이 말입니다.

그리고 궁금해지더군요. 하나님에게 가까워질수록 ‘나’는 어떻게 될까. 또 하나님에게서 멀어질수록 ‘나’는 어떻게 될까. 흔히들 생각합니다. 가까워질수록 ‘영광’이 있고, 멀어질수록 ‘비참함’이 있을 거라고 말이죠.
 
그런데 옥 목사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서 보는 이들은 자신의 추함을 볼 것이고, 멀리서 보는 이들은 자신의 잘남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무릎을 쳤습니다. 그제야 알겠더군요. 옥 목사께서 왜 ‘100주년 기념대회’의 대표 설교에서 그토록 가슴을 치며 ‘회개’를 외쳤는지 말입니다.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열쇠’더군요. 무슨 열쇠냐고요? 바로 ‘나’를 여는 열쇠죠. “내 탓이오” “나의 잘못”이란 회개를 통해서 강철같은 갑옷으로 무장한 ‘나’를 한꺼풀씩 벗기란 얘기겠죠. 그래서 갑옷 속에 숨겨진 나의 죄, 나의 부끄러움, 나의 가짐을 보라는 얘기겠죠.
 
그 순간, ‘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온갖 집착과 욕망으로 범벅이 된 ‘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더럽겠죠. 그리고 추하겠죠. 그게 한 점의 죄, 한 올의 부끄러움도 없는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실체겠죠.
 
그런데 그 ‘추함’이 참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여전히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다면 그 ‘추함’마저 볼 수가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추함을 볼수록 ‘나’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서는 거겠죠.
 
‘가장 큰 자가 가장 작은 자요,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자’란 얘기도 같은 맥락이지 싶네요. 그렇게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지다가 결국 ‘나’는 없어지겠죠. 하나님 속으로 온전히 녹아들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옥 목사께서 지적한 거겠죠. ‘정말로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나와 하나님, 그 사이의 간격은 얼마나 될까요. 그럼 먼저 ‘나’를 봐야겠네요. ‘추한 나’가 보이는지, ‘잘난 나’가 보이는지, 아니면 ‘작은 나’가 서있는지, ‘큰 나’가 서있는지 말입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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