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재 말썽 의원들 엄정처리 불보듯/여론 살피며 칼 가는 청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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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금은 무혈혁명… 옥석 꼭 가리겠다/개혁에 걸림돌되는 역작용은 차단”
비록 『부자들의 금준미주가 천인혈이 아니고 옥반가효가 만성고가 아닐지라도』(춘향전) 부자들은 대중의 질투대상이 되기 쉽다. 특히 대중을 위한 정치를 펴겠다고 나선 국회의원의 경우 아무리 정로를 밟아 치부했다 하더라도 대중들은 쉽게 납득하지 않는다. 하물며 이들이 부동산투기에다 탈세 또는 공직을 이용한 치부까지 한 흔적이 있음에야 말할 나위도 없다.
세론은 이제 분노의 차원에서 한단계 더 위로 올라가 청와대와 민자당지도부가 문제의 의원들을 과연 어떻게 처리할는지를 주시하고 있다.
○…민자당의원 재산공개이후의 비등하고 있는 여론에 대해 청와대는 「예상대로」라는 반응속에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한 고위 당직자는 『현재의 상황은 일종의 「무혈혁명」』이라며 『이같은 과정을 거쳐 문민정치인의 본질과 힘을 확인하고 30년 독재권력하에서 부귀를 쫓던 인물을 가려내 이들이 주도한 비정상적 정치를 혁파해 나가는 것 아니겠느냐』고 전망했다.
○“수구제거 아니다”
청와대측은 그러나 『이같은 일련의 사태전개가 다수의 민정계를 거세하기 위한 정치보복적 계략이 숨어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선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수구를 철저히 배제한 새정치는 쿠데타세력들이나 하는 것이지 우리가 지향하는 개혁은 깨끗한 정치를 해보자는 것에 모든 귀결이 있다』고 강조.
이 당국자는 『문제가 된 이상 엄정한 「처리」는 불가피하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결심이며 우리는 국민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고위관계자는 『문제의 정치인들이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는 본인과 언론들이 가장 잘알지 않느냐』며 공직에서의 자진사퇴뿐 아니라 사법처리까지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청와대는 여론의 전개과정을 지켜본뒤 조치 대상자의 범위와 처벌강도를 조절한다는 입장이다.
한 고위관계자는 『국민들이 어떻게 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는데 빗발치는 여론과 김영삼대통령의 기존 해바라기성 여당 정치인에 대한 불신을 감안할 때 「간단치」 않을 것이라는 것이 청와대내의 분위기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문제의원의 응징을 ▲국회직 또는 당직사퇴 ▲의원직 사퇴 ▲형사처벌의 세가지 부류로 생각하고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도덕적 책임」이라는 것. 한 관계자는 『평생을 독재권력의 편에서 온갖 짓 다하면서 개인적 치부와 권력의 단맛을 본 사람들이 지난 대선때 막바지에 YS를 조금 도운 것을 가지고 생색을 내거나 보상을 받으려는 것은 YS정치를 잘 못보고 있는 것』이라고 일침.
그러나 이 당국자는 아직 처리에 관한 최종 판단이 선 것은 아니라고 누차 강조한뒤 『국회의원은 선출직이라는 점을 잘 알고있다』고 부연.
시비의 가장 큰 대상이 되는 부동산투기에서 조세범처벌은 시효가 5년이라는 점도 의원들을 함부로 자를 수 없게 하는 한 요인이다. 즉 대부분의 「투기」가 조세범처리시한 5년전에 있었던데다 오히려 문제된 사안은 그 이전의 것들인 만큼 사법처리 방침이 서더라도 해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것.
○10여명 정밀실사
○…청와대는 일단 ▲재산형성과정에서 상습적인 부동산투기 의혹이 있거나 ▲자녀 이름으로 재산을 취득하면서 증여·상속세 탈세 혐의가 있고 ▲공직을 이용해 축재한 것으로 보이는 의원들에 대해 재산형성과정과 재산내용의 실태를 정밀실사할 예정이다.
실사대상 의원으로는 국민들의 가장 따가운 눈총을 받은 10여명이 제일 먼저 꼽히고 있다. 청와대비서실은 이들에 대해 실사를 마친뒤 곧바로 김영삼대통령에게 향후처리에 관한 의견을 덧붙여 실사내용을 보고할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통령은 아직까지 민자당 의원들의 재산공개에 대해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는 23일 당의 신임 실·국장들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뼈있는 말을 했다.
『우리당은 눈물과 땀을 흘려야 하며 그 눈물은 회개와 참회의 눈물이어야 한다』『(러시아를 예로 들며) 개혁에 적응하지 못하는 수구세력들이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은 역사의 물결이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결과 국민열망을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는게 당내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특히 도마위에 올라 있는 의원들은 이말의 의미를 여러각도로 해석·분석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황급히 문화재단을 설립,땅 등을 기증하기로 한 박준규국회의장처럼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대세는 그를 사퇴하도록 몰고갔다.
재산공개파문 수습과 관련,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은 현재 묵묵히 여론의 동향만을 읽고 있을뿐이나 이번 재산공개가 결과적으로 개혁의 걸림돌로 역작용하는 것은 어떻게든 차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당장 어떤 후속조치를 취하더라도 이번 재산공개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전망이다. 15대 총선때가 되면 후유증이 다시 불거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의원들은 우선 공천과정에서부터 상당한 난관에 부닥칠 것이다.
또 겨우 공천을 받는다 하더라도 당선의 길은 더욱 험난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결국 공천과 선거를 통한 여권정치세력의 대폭적인 물갈이가 예견된다는 분석이다.
○대폭 물갈이 예상
때문에 민자당 일각에서는 청와대측이 오히려 이같은 장기적인 후유증을 기대하고 재산공개 고삐를 바짝 당긴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나돌고 있다. 특히 당초 여론재판을 우려,재산공개를 꺼렸던 민정·공화계의원들은 「의도된 거세론」을 실감하는 눈치다.
민정계의 한 의원은 『재산공개 결과 3∼6공에서 양지바른쪽에 섰던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극명하게 대비돼 축재과정의 정당성·합리성을 따지기도 전에 「인민재판」에 회부되고 있다』며 『이번에 상처입은 의원들은 예전처럼 정상상태로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계의 한 의원도 『김 대통령은 과거 정통성이 없던 정권의 여당이 부정한 돈으로 권력을 지탱했고 그런 것에 익숙한 구여권인사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면서 『김 대통령이 당부터 개혁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썩은 물부터 퍼내겠다는 뜻』이라고 물갈이론을 설파했다.
하여튼 김 대통령이 물갈이를 의도했든,하지 않았든 이번 재산공개결과 YS식 개혁에 불만을 품고 반발할 소지가 있었던 당내 보수세력들은 더이상 오금을 펴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제 청와대측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의원재산을 실사,이미 활자화된 재산목록과 비교할 수 있게 돼있다. 때문에 경우에 따라선 앞으로 공천도 받기전에 여론에 의해 정치생명이 끊길 사람이 적지않게 나올지 모른다는 관측이다.<김현일·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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