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가슴에 억장이…”(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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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우리나라 의정사상 처음으로 민자당 국회의원·당무위원 1백61명의 재산내용이 공개된 22일 본사에는 독자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그 전화중 대부분은 국회의원들의 재산형성과정에 대한 의혹이나 불성실 신고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 「한탄」의 내용이었다.
『국회의원 대부분의 재산이 「몇십억」이라는 기사가 저희들 가슴을 「억,억」 막히게 합니다.』
보증금 8백만원에 월세 6만원의 반지하 단칸방에 세들어 산다는 차모씨(42·야채상·경기도 안양시 안양3동)는 『요즘 같아선 신문읽고 싶은 생각이 안든다』며 밝은(?) 기사를 실어줄 것을 당부했다.
멀리 전남 여수에서 전화를 걸어온 강모씨(51·주부)는 신문기사를 보고 화가 나서 전화했다며 『신문이 왜 이렇게 서민들 기를 죽입니까. 서민들에게 너무나 큰 액수인 「억」이 그렇게 흔한 겁니까』라며 기사를 읽는 서민들 심정을 알아달라고 호소했다. 윤모씨(46·회사원·경기도 용인군)는 『수십억원의 땅에 주택만 여러채씩 가진 의원님들이 해마다 전세파동을 겪어야 하는 우리 서민들의 애환을 알고 있을까요』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20여년을 알뜰히 저축해야만 자신의 집 한채값을 모을 수 있는 서민들로서는 신문지면마다 예사롭게 등장하는 「억」이란 단어가 몹시 괴로운 듯 했다. 의원들의 재산실사(?)를 위해 「재산의 현장」을 찾은 기자도 비슷한 체험을 하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냥 세들어 살 뿐이지 땅값에는 관심이 없어요.』
10여년이상 살아온 주민들의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이 동네에 산다는 것만 알지 의원님과 얘기 한번 나눠본적 없어요.』
모 의원의 자택에서 약 30여m 떨어진 곳에서 식료품점을 하는 한 주민의 씁쓸한 대답이었다. 국민을 대변하는 선량인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국민 대다수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음이 확인된 슬픈 날이었다.<이상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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