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쓰고 춤추는데 익숙한 북한 핵시설 모호하게 신고할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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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은 이제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모든 핵 프로그램의 신고와 영구적 불능화라는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문제는 신고다. 북한이 모호하게 신고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신고의 투명성 확보가 핵 프로그램을 불능화하는 것보다 어렵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존 페퍼(사진) 국제관계센터(IRC) 국제문제담당 국장은 15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은 비핵화로 가는 첫걸음을 뗀 것일 뿐 많은 난제가 남아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외교정책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싱크탱크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 공동 소장도 맡고 있는 그는 "고농축 우라늄(HEU) 문제와 관련해선 북.미가 협상할 여지가 있으나 북한이 이미 만든 핵무기와 추출해 놓은 플루토늄을 제거하는 문제를 논의할 땐 큰 진통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은 핵무기와 플루토늄을 협상카드의 전부로 보고 있으므로 큰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한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다음은 일문일답.

-북한의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을 어떻게 보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예상되는 난관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우선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 신고 문제에 매달릴 것이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힘이 약한 나라는 싸움판에서 신비 전술을 들고 나온다. 북한은 여러 베일을 쓰고 춤을 추는 데 익숙하다. 완전히 투명해지면 대가가 따라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북한은 신고 단계에서 모호성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이때 미국은 그걸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북한과의 신뢰를 쌓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신고만 제대로 되면 불능화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HEU 프로그램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어렵지 않겠나.

"협상가들이 수완을 발휘할 걸로 본다. 미국의 태도는 처음보다는 다소 누그러졌다. 북.미가 서로 오해한 대목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북한은 HEU 관련 장비를 미국에 넘기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할 여지가 있다."

-HEU 문제보다 어려운 쟁점은 무엇인가.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와 이미 추출해 놓은 플루토늄 문제다. 북한은 그걸 미국에 대한 억지력의 핵심으로 본다. 그러니 북한은 미국이 북한 체제를 바꾸겠다고 하는 이른바 적대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또 상당한 보상을 받지 않는 한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를 다룰 때 미국이 얼마나 인내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북한을 비핵화하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북.미 사이에 신뢰가 쌓이면 난제들도 하나 둘씩 풀릴 것이다."

-북한이 미국에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해 달라고 요구하는데.

"상황 진전에 따라 미국이 제재를 해제할 여지는 있다. 미국이 북한과의 수출입을 허용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경제제재를 전면 해제하는 건 쉽지 않다. 워싱턴엔 북한을 경제적으로 번영시켜야 한다는 아이디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도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쉽게 빼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18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6자회담 전망은.

"미국과 북한이 유연성을 발휘하면 진전이 있을 것이다. 평화체제 문제를 다루는 실무그룹 등에서 어떤 성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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