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언론관(성병욱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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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신문없는 정부와 정부없는 신문중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신문의 긍정적인 역할을 얘기할때 흔히 인용되는 제퍼슨의 경구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했고 후에 3대 대통령을 지낸 제퍼슨은 언론과 복합적인 인연을 지닌 사람이다. 이 유명한 말은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인 1787년 에드워드 캐링턴이란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이 말로 제퍼슨은 언론자유의 옹호자란 이미지를 남겼다.
○집권하자 시각 달라져
그러나 그러한 제퍼슨도 대통령(1801∼1809년)이 되고 신문에 시달리자 생각이 달라진다. 대통령임기말에 17세의 한 신문기자 지망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신문을 절대 보지 않는 사람이 보는 사람보다 오히려 정보에 더 잘 접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게 잘 못아는 것 보다는 진실에 가깝다』는 지독한 신문불신론을 펴고 있다. 그야말로 1백80도 변신이었다. 그럼에도 역시 제퍼슨답게 당시 명백히 허위사실을 퍼뜨리고 인신공격을 일삼는 저질신문에 매우 격분하면서도 그 신문에 손대거나 종사자들을 처벌하려 하지는 않았다.
어느 시대,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언론의 자유,언론의 비판기능이 살아 있는한 집권자들은 언론에 불만을 갖게 마련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사람과 정권의 성격에 따라 대응이 달랐을 뿐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박사는 집권초기 국내 신문의 비판때문에 골치를 썩였다. 노대통령의 건강을 걱정한 주변에서 국내신문을 멀리 하도록 해 이 대통령은 집권기간중 오랫동안 영자지외의 국내신문을 접하지 않았다. 신문의 비판에 대해 격노하거나 불만을 갖게 되지는 않았지만 그대신 세상물정으로부터는 점점 소외되고 말았다.
박정희대통령은 정보취미가 강한 집권자였다. 복수의 정보기관으로부터 정보보고를 받으면서도 신문을 비교적 자세히 읽었다. 정부의 비정을 파헤치거나 비판적인 기사에 대해서는 관계부처를 닦달했고 언론에도 불만을 터뜨렸다. 자연히 권력기관에선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기사를 틀어막는데 큰 비중을 두게 된다. 어느 때보다도 이 시기에 「남산」에 끌려가 곤욕을 치른 언론인이 많았다.
언론통폐합과 언론인 숙정에서 비롯한 전두환대통령시대의 언론정책은 언론통제의 체계화였다. 이른바 보도지침을 통해 기사의 게재여부부터 크기·방향까지 좌우하려 했다.
○6공때 비판기사 숨통
초기 개혁의 기치를 들었을때는 개혁이란 명분으로 적극적인 찬양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서슬이 퍼렇던 시기를 지나고는 비판기사를 완봉할 수 없었지만 5공말까지도 대통령과 권력기관에 대한 비판은 금기1호였다.
6·29선언과 선거운동 과정에서 대통령의 만화소재·희화화 수용을 공언한 노태우대통령의 6공에 이르러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되살아난다. 아픈 비판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긴 했지만 잘 참아낸 편이다.
중앙일보 편집국장때 겪은 일이다. 90년 9월 창간25주년을 앞두고 대통령회견이 예정되어 있었다. 바로 회견전날 노 대통령에게 무척 아픈 여론조사결과가 기사로 나갔다. 청와대 대변인으로부터 회견을 앞두고 이럴 수가 있느냐는 항의가 왔다. 그러나 다음날 만난 대통령은 그 기사에 대해서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6공도 수서사건 때는 워낙 급해서인지 가용채널을 총동원해 언론기관에 압력을 가했다.
그러면 지금 김영삼대통령의 우리 언론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집권하기까지 김 대통령은 언론과 남다른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오랜 정치생활을 통해 그만큼 언론의 호의를 받은 정치인도 없을 것이다. 야당생활을 통해 쌓여진 우호적 분위기는 여당으로의 변신이후에도 크게 손상되지 않았다. 김 대통령 스스로도 그런 점을 언론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집권과 함께 그는 나라의 조타수로서 국민적 기대와 관심의 중심에 서 있다. 자연히 그의 초기 인사는 언론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몇가지 에러가 집중적인 보도·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김 정부로서는 불운이지만 불가피한 일이었다.
○제퍼슨예 교훈 삼아야
이러한 인사파문 보도에 대해 김 대통령 스스로도 몇차례 불편한 심정을 토로했다. 더구나 당국자들 중에서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느니,「대통령이 앞장서 개혁하겠다는데 다리를 잡자는 거냐」 「언론이 수구세력에 놀아난다」는 등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언론인과 언론계에는 문제가 없느냐는 식의 말까지 한다고 한다.
새시대를 맞아 언론도 신명나는 사회건설에 동참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런 고압적 분위기는 자칫 거부감을 갖게할 소지가 있다.
제퍼슨의 예에서 보듯 집권전과 후에 집권자의 언론관이 변하는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제퍼슨처럼 아무리 불만스럽더라도 권력을 이용해 언론에 영향을 미칠 생각을 안하느냐,하느냐다.<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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