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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두우시시각각

금감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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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무총리나 장관은 아니지만 그 이상의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기관을 권력기관이라 한다. 국정원과 검찰, 경찰청과 국세청 등 4대 기관이 이에 속한다. 이들 기관의 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임명될 수 있다. 국세청과 함께 3대 경제권부로 꼽히는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도 4대 권력기관 못지않다. 이들 6개 기관 중 3개 기관장의 임기가 올 하반기와 내년 초에 끝난다.

 윤증현 금감원장은 8월 3일로 3년 임기가 종료된다. 금감원은 은행감독원과 보험감독원, 증권감독원과 신용관리기금 등 4개 기관을 통합해 1999년 1월 출범했다. 은행·보험·증권·카드 등 거의 모든 시중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 ‘금융 검찰’이다. 은행·보험·증권사의 영역 간 경계가 사라지는 겸업화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새 금감원장에 누가 임명될지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정상명 검찰총장의 임기는 11월 23일에, 이택순 경찰청장의 임기는 내년 2월 9일에 끝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들 권력기관의 장을 임명할까, 아니면 다음 정권에 넘길까.

 청와대는 최근 이 사안에 대해 검토했다. 노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어떤 결심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다음달 임기가 종료되는 금감원장과 국가청렴위원장의 후임 인선에 착수했다고 한다. 금감원장이야 노 대통령의 임기가 7개월 이상 남았으니 그렇다 치자. 문제는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이다.

 묘하게도 검찰총장의 임기 종료 시점은 대통령 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민감한 때다. 노 대통령 임기 만료 3개월 전이기도 하다. 누가 새 검찰총장에 임명되느냐에 따라 대선 관련 수사의 중립성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경찰청장의 임기는 노 대통령이 퇴임하기 불과 2주 전에 끝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의 후폭풍으로 이택순 청장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그렇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전효숙 헌재소장 임명 파문’이 단적인 사례다. 청와대는 전씨를 헌법재판소 재판관직에 놔둔 채 헌재소장에 임명할 경우 임기가 3년이지만, 재판관에서 사퇴하게 한 뒤 헌재소장에 임명할 경우 임기가 6년이 된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강행했다가 위헌 논란에 휩싸였다. 자신이 임명한 헌재소장이 다음 정권에서도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을 새로 임명할 기회가 있는데 이를 포기하려 하겠는가.

 더구나 현 정권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다음 정권, 그 다음 정권에서도 바꾸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 “임기가 두 달 남았든, 세 달 남았든 내가 가서 도장 찍어 합의하면 후임 사장(대통령)이 거부 못한다”고 했다. 각종 부동산 정책을 내놓으면서 “헌법보다 바꾸기 어렵게 했다”고 자랑했다. 논란 많은 ‘대학 정원 11% 기회균등할당제’를 2009년 대학입시부터 적용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다음 정권에 대한 불신과 ‘나는 옳다’는 확신에 차있는 정권이 대통령 임기를 3개월 또는 2주 남겨 놓은 시점이라 해서 임명권을 포기하거나 유보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임기 하루 전이라 해도 공직임명권을 행사할 수는 있다. 그러나 법률상 문제가 없다 해도 검찰총장과 경찰청장 임명은 재고해야 한다. 자칫 “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를 숨기기 위해 ‘노무현의 사람들’을 임명한 것 아닌가”하는 의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권력기관장의 임기제가 악용되는 선례를 남길 수도 있다. 물러나는 대통령마다 퇴임 직전에 권력기관장을 새로 임명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법률에 ‘퇴임 ○○일 전에는 임명할 수 없다’는 등의 제한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정치적 상식을 믿었기 때문이다. 상식을 외면하면 쓸데없는 논란만 가중된다. 상식이 잘 통하지 않는 시절이기에 하는 말이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