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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신의 나노 이야기] 연꽃에서 찾아낸 첨단 기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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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27면

이호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선임연구원

여행을 다니다 보면 자연 속의 신기한 현상에 한번쯤은 궁금증을 느끼곤 한다. 거미는 어떻게 거미줄 속을 저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까? 더러운 연못의 연꽃은 어떻게 깨끗할까? 소금쟁이는 왜 물에 빠지지 않을까? 최근 과학자들은 신기한 자연현상의 원인을 밝혀 인공적으로 모방하려는 시도를 다양하게 하고 있다. 이런 학문분야를 자연모사 기술이라고 한다. 자연계의 생물들을 모방한다고 해 생체모방기술이라고도 불린다.

그럼 왜 인간은 자연을 모방하려고 할까? 생물체란 수십 억 년 동안 지구의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끊임없이 진화하며 발전해온 가장 최적화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런 ‘명품’을 공학적으로 개발·응용하려고 시도하다 보면 새로운 기능과 제품,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나노(10억 분의 1)와 바이오기술 분야에서 자연모사공학의 발전은 더 가속화하고 있다.

연꽃 표면에 붙은 작은 돌기의 역할을 응용해 항상 깨끗하게 아파트 외벽을 유지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오래전부터 인간은 자연의 생명체를 모방해 다양한 발명품을 내놨다. 새를 모방한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딱정벌레를 모사한 독일 폴크스바겐의 자동차, 여성의 몸매를 모방한 코카콜라병, 우리나라에서는 거북이의 단단한 등껍질을 모사한 이순신의 거북선 등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연의 외형적 흉내를 낸 데 불과하다. 진정한 자연모사는 ‘기능’의 모사여야 한다.

자연모사기술의 대표적인 사례가 연꽃잎을 응용한 것이다. 연꽃잎은 흙탕물 속에서도 항상 깨끗한 잎을 유지한다. 연꽃잎의 표면이 나노 크기의 미세한 돌기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방울이 표면에 젖어들지 못하고 표면 돌기 위에 떠돌게 된다. 돌기가 연꽃잎이 소수성(疏水性·물에 젖지 않는 특성)을 가져 자기세정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연꽃잎 표면 돌기를 만들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하는 것이다. 나노미터 두께인 탄소나노튜브를 수직으로 자라게 해 일명 나노숲(nano-forest)을 표면에 만들면 연꽃 돌기의 기능을 한다. 또 다른 방법은 반도체 제조기술인 리소그래피(마스크 등을 이용해 회로패턴을 만드는 기술)를 이용해 나노막대를 표면에 촘촘히 형성시키는 것이다. 연꽃을 모방한 이런 기술은 먼지가 끼지 않는 아파트 발코니 유리, 와이퍼가 필요 없는 자동차 유리, 항상 깨끗한 아파트 외벽 등에 쓰인다.

이외에도 수직벽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코도마뱀의 발바닥을 모방한 나노섬모, 강철보다 10배 강하다고 알려진 거미줄을 모방한 바이오스틸(Biosteel), 바닷가 바위에 단단하게 붙어 있는 홍합을 모방한 단백질 접착제 등에 대한 연구가 현재 진행 중이다. 최근 미국 등 나노기술 분야의 선도국가들은 자연모사공학을 이용해 신기능성 소재를 개발하고 있으며 이를 우주산업 및 국방산업에 활발히 응용하고 있다. 한계에 도달한 과학기술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하며 경제적 잠재력을 갖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자연의 생물다양성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난개발이 계속된다면 생물다양성뿐만 아니라 모방을 통해 인간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비밀까지 영영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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