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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은 유럽에, 다른 발은 아시아에-예카테린부르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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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13면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일가가 처형된 장소에 세워진 ‘피 위의 성당’ 내부

Yekaterinburg 예카테린부르크

시베리아 횡단을 시작한 지 열이틀째인 29일 시베리아의 마지막 도시 예카테린부르크에 도착했다. 이 도시를 지나 우랄산맥을 넘으면 거기서부턴 시베리아가 아닌 유럽이 시작된다.
객실 문을 열고 나서는데 더운 기운이 확 밀려온다. 바깥기온이 33도. 100여 년 만에 찾아온 이상 고온이라고 한다. 시베리아에서 그것도 5월에 이런 불볕더위를 만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도심에 북적대는 사람들 모두가 한여름 옷을 입었다. 웃통을 벗고 다니는 남자들과 아예 수영복 차림을 한 여성들도 보인다.

도시는 깨끗하게 정돈된 편이었다. 다른 도시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도심 이곳저곳에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우랄 지역에 풍부한 철·알루미늄·금 등 광물 가격이 오르면서 돈이 넘친다고 한다.
예카테린부르크는 광산 도시로 출발했다. 1723년 러시아의 근대화를 이끈 전제군주 표트르 대제의 명령으로 대규모 제철공장이 이곳에 세워졌다. 도시 이름도 대제의 부인 예카테리나 1세의 이름을 땄다. 19세기 들어 우랄 지역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러시아판 골드 러시가 시작됐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중기계 공장이 들어선 데 이어 제2차 세계대전 중엔 서부지역 군수공장이 대거 옮겨왔다. 130만 명 인구를 가진 예카테린부르크는 여전히 러시아의 기계 군수 산업 중심지다.

3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경계선에 세위진 기념비 ,스탈린 탄압 희생자 위령비

이곳은 러시아 제정이 숨을 거둔 비극의 도시이기도 하다.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일가가 처형된 곳으로 향했다. 공산혁명 이듬해인 1918년 황제 가족은 레닌의 관용 덕분에 처형을 면하고 예카테린부르크로 유배됐다. 황제와 황후, 4명의 딸과 11살 난 아들, 시종 등 모두 11명이 한 상인의 저택에서 살았다. 그러다 시베리아를 장악한 반혁명군(백군)이 도시를 압박해 들어오자 당황한 적군은 저택 지하실에서 황제 일가를 총살해 버린다. 시신을 인근 광산으로 옮긴 뒤 석유를 뿌려 불태웠다. 소련 붕괴 후 수년간에 걸친 유전자 확인 작업으로 신원이 밝혀진 황제 일가의 유해는 98년 페테르부르크 성당에 안치됐다.

황제 일가가 처형된 곳엔 ‘피 위의 성당’이란 정교회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2003년 황제 처형 85주년을 맞아 세워졌다. 성당 안 황제 일가의 영정을 모신 제단을 찾은 방문객들이 연방 고개를 숙이며 가슴에 십자가를 긋는다.
도심을 빠져나와 동쪽으로 향하자 수도인 모스크바로 이어지는 대로가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 차로 꼬박 이틀을 달리면 모스크바에 닿는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엄두를 내기도 힘들 정도의 먼 거리지만 여기 사람들은 자주 차로 모스크바까지 간다.

대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멈춰선 곳은 스탈린 탄압 희생자 위령탑. 1930~50년 사이에 자행된 스탈린의 무차별 숙청 때 이 지역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집단 매장지다. 돌로 된 비석에는 2만 명이 넘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매장지는 80년대 고속도로 공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됐는데 소련 붕괴 이후 비밀 해제된 국가보안위원회(KGB) 문서로 신원이 모두 밝혀져 96년 위령탑이 세워졌다. 이데올로기의 독재와 그 와중에 스러져간 수많은 생명들. 피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길 빌었다.

경사를 오르던 버스가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경계비 앞에 멈췄다. 양 대륙을 나누는 경계선에 세워진 비다. 받침돌에 ‘유럽’과 ‘아시아’란 단어가 러시아어로 새겨져 있고, 그 위에 철제 구조물이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다. 경계비 앞에서 한 발은 유럽 쪽, 다른 발은 아시아 쪽에 두고 기념촬영을 한다고 야단이다.
경계비를 구경하고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길 한편에 빨강·파랑·노랑·흰색 등의 천이 요란하게 걸린 나무가 시선을 끈다. 심심찮게 보아온 시베리아판 서낭당이다. 이곳에선 ‘세르게’라 부른다. 현지인들 중엔 아직도 세르게 앞에 보드카를 바친 뒤 안전운행을 비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같은 뜻으로 당산나무에 헝겊을 매달기도 한단다. 뭔가를 매달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 조각을 찾다 마땅한 것이 없어 안경 닦는 수건을 매달았다. 남은 여행이 무사하길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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