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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제국'의 힘을 느끼다-모스크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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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15면

크렘린 궁 앞 붉은 광장의 ‘성 바실리 사원’

Moskva
모스크바

31일 정오 황금 독수리호가 종착지인 모스크바의 카잔 역에 도착한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지 13일 만이다. 일반 횡단열차가 쉼 없이 달려 6박7일이 걸리는 거리를 중간 기착지에 들러 쉬엄쉬엄 관광을 하면서 온 때문이다. 러시아 땅의 광대함을 몸으로 느낀 여행이었다. 모스크바를 관광하고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나면 여행이 끝난다.

시내 관광 1순위는 크렘린이다. 크렘린과 그 앞의 붉은 광장은 러시아의 얼굴이다. 12세기에 처음 축조된 크렘린은 붉은 벽돌로 된 삼각형 모양의 거대한 성곽이다. 그 안에 13~16세기에 지어진 러시아 정교회 성당들과 대통령궁이 자리 잡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 서쪽의 숲 속에 있는 개인 별장에 살면서 크렘린으로 출퇴근한다.

붉은 광장은 15세기에 조성됐다. 광장 바닥이 붉은 색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러시아어에서 ‘붉다’는 뜻의 형용사 ‘크라스니이’는 ‘아름답다’는 뜻도 함께 갖고 있다. 그래서 붉은 광장은 ‘아름다운 광장’이란 의미다. 크기도 대학 운동장 정도에 불과하다. 막연한 환상을 갖고 왔던 사람들은 “에게~~ 겨우 이 정도야”라며 실망한다.

붉은 광장 옆에 있는 39굼39(GUM)백화점

광장 남쪽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양파 머리 모양의 정교회 성당 ‘성 바실리 사원’이 있다. 비잔틴 양식과 러시아 전통 목조 양식을 결합한 이 사원은 러시아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16세기 이반 뇌제가 앞서 지나왔던 카잔 공국을 정복한 기념으로 지었다고 한다. 사원이 너무나 아름다워 비슷한 건물을 다시 짓지 못하도록 건축가의 눈을 뽑았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온다.

광장 옆엔 유명한 ‘굼(GUM)’ 백화점이 있다. 19세기 말에 지어진 러시아 최고 백화점이다. 3층 건물에 천장을 유리로 만들어 자연 조명을 끌어들였다. 90년대 초반까지 텅 비어 있다시피 했던 백화점은 지금 명품점으로 변신했다. 버버리·크리스찬디올·샤넬·돌체비타·루이뷔통·피에르가르뎅 등 내로라하는 명품들이 다 들어와 있다. 오일 달러 덕에 몰라보게 높아진 모스크바의 구매력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러시아 경제의 활황은 모스크바 거리에서도 느껴진다. 눈에 띄는 자동차의 3분의 2 정도가 유명 외국 메이커다. 벤츠나 BMW는 너무 흔한 차가 돼버렸고 대당 가격이 수억원대에 이르는 페라리·벤틀리·마이바흐·람보르기니 등 명차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아우디나 볼보는 아예 고급차 축에도 못 낄 판이다.

건축 붐도 만만찮다. 도시 전체가 온통 공사판이다. 주위에 포장이 둘러쳐지고 하늘 높이 크레인이 치솟은 건설 현장이 시내 곳곳에 있다. 크렘린 바로 옆에 있던 ‘모스크바’ 호텔과 6000명을 수용하던 대형 호텔 ‘러시아’도 새로 짓고 있다. 방문객은 늘어나는데 호텔이 부족해 숙박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고 한다. 300달러(약 28만원) 밑으로는 방을 얻기가 어렵단다. 우리가 묵은 최고급 호텔 ‘메리어트’의 하루 숙박비는 800달러나 했다.

러시아 경제의 활황은 수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푸틴이 집권한 2000년 이후 6~7%대의 고도 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 이어 1998년에 금융위기를 겪은 러시아의 현재 외환보유액은 중국·일본에 이어 세계 3위다. 올해 초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100대 억만장자 가운데 14명이 러시아인이었다. 이 목록에 낀 한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 국내총생산(GDP)도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 2003년 골드먼삭스가 낸 브릭스(BRICs) 보고서는 2028년까지 러시아가 이탈리아·프랑스·독일·영국을 제치고 세계 5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현재 추세라면 이 전망이 실현되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저녁 때 호텔 레스토랑에서 환송 파티가 열렸다. 2주 가까이 함께한 여행에서 정이 들었던지 모두들 작별을 아쉬워한다. 서로 주소를 주고받으며 재회를 다짐하기도 한다.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할 확률이 훨씬 더 높지만… 시베리아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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