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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5년 만에 최악의 분기 실적…두 가지 딜레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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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삼성전자를 이끄는 쌍두마차는 반도체와 휴대폰이다. 반도체가 부진하면 휴대폰이, 휴대폰이 부진하면 반도체가 빈 자리를 메꿔 온 것이 그간의 ‘삼성전자 이익 공식’ 이었다. 업계에선 “반도체와 핸드폰을 함께 갖고 있다는 것은 삼성전자의 축복” 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따라서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5년 6개월 만에 1조원 선에도 못 미친 것은 이런 ‘이익 공식’이 무너졌다는 뜻이다. 두 마리의 말이 동시에 속도를 늦춘 셈이다. 일단 최악의 상황은 벗어났다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문제는 회복의 폭과 속도다. 단순히 시황 개선을 기대하기 보다는 적극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들 쌍두마차가 2003년 이후 쉼 없이 달려 온 만큼 본격적인 도약을 위해선 체질 개선을 통한 원기 회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황의 법칙도 한계는 있다"=해마다 이맘때면 경기도 화성의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는 눈코 뜰새 없이 바빠진다. 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도 최근 현지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9월이 다가오면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라는 게 한 관계자의 말이다.

매년 9월이면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신기술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1999년 256Mb 제품을 선보인 이래 지난해에 40나노 공정기술을 적용한 32기가 낸드플래시를 발표하는 등 7년째 세계 최초 기록을 경신해왔다. 메모리 반도체 집적도가 1년에 2배로 늘어 난다는다는 ‘황의 법칙’을 스스로 입증해 온 것이다.

황 사장은 메모리 업계가 PC 중심의 사고에 묶여 있을 때 '황의 법칙'을 통해 휴대용 IT기기가 메모리의 성장을 이끄는 신시대가 올 것이라고 선언했었다. 이 예측은 정확했고 선점 투자를 했던 삼성전자는 황금기를 맞았다.

메모리 업계에서 미세화 기술은 곧 돈이다. 같은 크기의 반도체 집적도를 높일수록 그 업체의 생산 원가는 줄어든다. 메모리 값 급락에도 삼성이 다른 업체들에 비해 나은 실적을 올린 것도 결국 기술력 덕이다. 증권가에서도 "그런대로 선방했다"는 평가와 함께 3분기부터는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삼성이 이끌어 온 미세화 중심의 경쟁 구도가 계속될 지는 미지수다. 황 사장 스스로 몇 달 전 한 인터뷰에서 “미세화에는 한계가 있고 앞으로 속도는 늦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당장 '황의 법칙이 깨지는 것 아니냐'며 논란이 일자 그는 “올해도 문제가 없다” 며 상황을 진정시키기도 했다.

반도체는 소자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축소될 땐 전자가 부도체를 그냥 통과해 버린다. 이럴 땐 반도체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이런 한계를 삼차원 입체구조, 차지트랩플래시(CTF) 등 신기술로 극복해왔다.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질 전망이다.

공정이 복잡해지면 보다 정밀한 장비가 필요해지고 비용은 늘어난다. 어느 순간 ‘기술=돈’ 이 성립되지 않는 시점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또 메모리 용량이 무한히 늘어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고의 기술력이 적용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가 시장의 외면을 받은 사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돌파구는 새로운 성장 비전 창출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비메모리 분야에서 약진하기는 힘들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히는 것은 P램, 퓨전 반도체 등이다. 특히 P램은 D램과 플래시의 장점을 두루 갖춰 차세대 메모리로 기대를 받고 있다. 또 퓨전반도체란 프로그램 처리와 저장 등 서로 다른 기능의 메모리를 한데 묶어 한 개의 칩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만만찮은 경쟁자가 나타났다. 바로 인텔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양분해 온 두 기업이 새 먹거리를 찾다 결국 맞닥뜨린 형국이다. 인텔은 P램 시장선점을 위해 올 하반기 ST마이크로와 합작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P램 상용화를 누가 먼저 해내는가가 초미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노키아를 넘어라"=황 사장이 삼성의 기술력을 대표한다면 최지성 정보통신총괄 사장은 마케팅 대표주자다. 그는 이달로 입사 30년째를 맞았다. 삼성물산 신입사원 시절 그의 첫 업무는 이쑤시개ㆍ면봉 등 잡화 수출이었다. 1985년에는 반도체 영업을 맡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홀로 파견됐다.

당시 사무실엔 책상과 전화기, 갓 생산을 시작한 64KD램 반도체 박스만이 놓여 있었다. 전화번호부를 뒤져 ‘…컴퓨터’,‘…전자’라는 글자만 나오면 전화를 걸고 찾아가는 강행군을 벌였다. 그렇게 첫해 100만 달러어치를 팔았고 매년 기록적인 판매 신장률을 올렸다. 디지털미디어총괄을 맡았던 지난해에는 소니를 제치고 LCD TV 업계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가 '타고난 장사꾼'으로 불리는 이유다.

올 초에는 정보통신총괄의 '구원투수' 로 투입됐다. 애니콜은 한동안 부진의 늪에 빠져있었다. 디자인을 앞세운 모토롤라 ‘레이저’ 에 주춤거리더니, 저가폰을 앞세운 업계 1위 노키아의 공세에 신흥 시장을 선점 당했다.

최 사장의 일성은 “노키아를 잡겠다” 는 것이었다. 그는 기존의 프리미엄 제품 전략 에 더해 인도ㆍ중국ㆍ동남아 등에 저가폰 출시를 늘리는 양동작전을 구사했다.

일단 시장점유율을 늘리는 데는 효과를 봤다. 삼성의 2분기 휴대폰 판매량은 사상 최고치인 3740만대에 달했다. 지난해 4분기 10.9%였던 세계 시장 점유율도 14%대로 진입했다. 2위 모토롤라에 역전도 바라보는 상황이다.

하지만 저가폰 비중이 늘면서 수익성이 큰 폭으로 낮아졌다. 정보통신총괄의 영업 이익률은 1분기 13%에서 2분기 8%로 추락했다. 같은 기간 휴대폰의 평균판매가격(ASP)도 대당 155달러에서 148달러로 떨어졌다.

한국투자증권의 노근창 애널리스트는 “브랜드가 중요한 고가폰과 달리 저가폰은 판매상이 어떤 제품을 권하는가가 결정적"이라며 "마케팅비가 늘어 난 데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장을 넓히는 것이 급선무라는 게 삼성 측의 설명이다. 지금처럼 1등인 노키아와 멀찍이 떨어진 후위 그룹에 머무르다간 삼성도 외풍에 휩쓸리며 등락을 거듭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장 환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 열풍을 일으키며 휴대폰 시장으로 진출했고, 소니에릭슨도 뮤직폰을 무기로 삼성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새 전략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빠른 시일 내에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수익성을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난 11일 정보통신총괄은 한 달여 간의 경영 진단을 마쳤다. 명실상부한 ‘최지성호’의 색깔을 낼 때가 됐다는 뜻이다.

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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