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트릭과 스릴 동반한 ‘잃어버린 15년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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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금 이 남자는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아니 어폐가 있다. 그는 이미 정신병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15년을 정신분열증 환자로 살아온 그다. 스무살 전 기억은 없다.

서른여섯이나 됐지만 병 때문에 부모 집에 얹혀 산다.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파리 도심 건물 45층에 있는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가끔씩 부지불식간 찾아오는 환각과 환청을 잠재워야 하기 때문이다.

8월 8일 아침 8시, ‘미친 놈’의 환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병원 빌딩이 폭발한다. 막 출근한 2000여 명의 사람들 가운데 그만이 살아남는다. 어떻게? 그는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 어디선가 또렷이 들려오는 테러범의 목소리를 듣고 건물을 서둘러 뛰쳐나온다.

 이때부터 주인공도 독자도 혼란의 연속이다. “내가 들은 것은 환청일까” 그조차 스스로를 의심한다. 그의 정신상태는 온전치 않다. 정체불명의 누군가를 피해 도망 다니는 그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그의 망상인지 현실인지 헷갈리기만 하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그는 면허증 없이도 능숙하게 운전을 하고, 위기의 순간엔 상대를 눕힐 한 방을 날릴 줄 알고, 자물쇠 따기도 처음이 아닌 듯 척척 해결한다. 그도 스스로를 놀라워한다. ‘진짜 나는 이런 존재였나’ 라고 신기해하는 순간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든다.

그의 부모, 더구나 그의 본명조차 행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제 자신의 정체성에 의혹을 품게 된다. “나는 정신병 환자가 아니었던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의 앞으로 날아온 편지 한 통으로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해진다. “당신은 정신분열증이 아닙니다. 프로토콜 88을 찾으십시오”

한 남자의 ‘잃어버린 15년 찾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코페르니쿠스 신드롬’을 소재로 삼는다. ‘인류의 미래를 뒤바꿀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오히려 사람들에게서 인정받지 못하는’ 한 남자의 진실게임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작가는 독자가 주인공 편에 쉽사리 설 수 없도록 ‘정신병’이라는 장애물을 남겨둠으로써, 읽는 이가 ‘그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의 실마리를 푸는 데 쉽게 동참할 수 없게 한다.

이제 독자는 지적 논리성을 따지기보다 어디까지를 믿고 말아야 할지 고도의 심리전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주인공이 남긴 메모들은 사건의 열쇠가 된다기보단 작가가 스릴러 장르에 녹인 철학적 사유다. 메모는 끊임없이 인위적 진화를 추구하는 인류를 비난하며 종말론적 불안을 얘기하고, 현대의 커뮤니케이션 부재가 그 종말을 앞당길 것이라고 예견한다.

세계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놓치지 않는다. 다른 국가의 내전을 종식시킨다는 이유로, 혹은 대테러 정책으로 또 다른 힘의 논리를 내세우는 미국·유럽을 비꼬는 메시지에선 통쾌함까지 느껴진다.

이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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