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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과주말을] 내가 입을 여니 세상이 변하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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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일상에 말이 차고 넘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유행어’라 불리는 수많은 말들이 세상을 주유하다 사라진다. 그러니 길고 긴 세계사에서 살아남아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면 ‘촌철살인’의 날카로움이 없어도, 삶의 진리를 담아낸 순도 99.9%의 빛나는 ‘명언’이라 일컫지는 못해도 의미는 있을 터다.

 책은 유구한 역사의 흐름에서 한 획을 긋거나 당시 사회를 뒤흔든 70인의 ‘한마디’를 통해 세계사를 하나씩 펼쳐나간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는 프로타고라스의 말은 그리스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실마리가 되고 르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는 근대 철학에 대한 논의를 여는 문고리가 된다. 지은이는 마르크스의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선언을 통해 공산주의를 들여다보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징검다리 삼아 도시국가 피렌체의 몰락을 그려낸다.

 다만 시대별로 정치나 철학, 사회상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과 말들을 찾다 보니 “사천 년이 그대들을 내려다보고 있다”(나폴레옹) “우리도 5시45분부터 응사하고 있다”(히틀러) “나는 그 여자, 르윈스키 양과 성적 관계를 맺지 않았다”(빌 클린턴)와 같이 ‘명언’의 반열에 올리기는 힘들 듯한 ‘한마디’도 등장해 다소 작위적인 듯한 인상도 준다..

  하지만 책의 곳곳에는 루비콘강을 건너며 카이사르가 내뱉은 “주사위는 던져졌다”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주인공이 되뇌여 유명해진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카르페 디엠(오늘을 즐겨라)”과 같은 익숙한 말들이 포진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과 달 표면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디며 닐 암스트롱이 세계인을 향해 던진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입니다”라는 ‘한마디’를 만나면 가슴이 훈훈해지는 느낌도 든다.

 이 책을 읽으며 얻는 소득 중의 하나는 책에 실린 ‘유명한’ 한마디의 저작권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과는 거의 다르다는 사실. 게다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각색과 윤색의 과정을 거쳐 마치 그 사람이 이야기한 것처럼 전해지는 경우도 많아 제대로 된 ‘족보’를 따지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작권자를 찾아 족보를 그려야만 맛인가. 말의 홍수 속에서 건져낸 ‘한마디’라는 것이 중요한 것을.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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