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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에도 익살과 정치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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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길을 걸을 때 대개 도로 표지판을 보고 방향을 잡는다. 종로3가, 을지로1가, 테헤란로, 강남대로 등.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수많은 표지판을 보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따라서 도로 표지판은 일단 간결하고 쉽게 방향을 지시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우리나라 도로 표지판들은 너무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 천편일률적이고 의례적인 표식으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 표지판들은 때로, 짜증을 유도하는 흉물이 되기도 한다.

메시지에 충실하면서도 위트와 디자인 요소까지 만족시키는 표지판이 많아진다면 도로 위가 즐겁지 않을까? ‘기호’라는 것이 본래 딱딱할 필요나 의무는 없는 것 아닌가?

외국여행에서 종종 경험하는 것은 외국의 표지판들 중에는 재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일본은 횡단보도 표지판 하나에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캐릭터와 디자인을 고려한 아이디어가 빛난다. 북유럽의 어느 한적한 국도를 가다 보면 <해리포터>의 덤블도어 교장을 닮은 마법사가 나타난다. 통행금지를 알리는 표지판에도 센스가 느껴진다. 캐릭터로 아기자기하게 꾸미지 않아도 재미있는 문구만으로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표지판도 있다. 미국 코네티컷주로 들어가는 고속도로 초입,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설명과 함께 그 아래 'We Apologize'라는 사과 문구가 첨부돼 있다. 왜 부시 대통령이 태어났다고 사과를 하지? 생각해보니, 코네티컷주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성향이 강한 곳이다. 표지판의 작은 문구 하나가 웃음과 정치적인 성향까지 드러낸 예다.

얼마 전, 하늘공원 올라가는 길에서 본 표지판도 재미있었다. 개구리가 하늘로 뛰어오는 듯한 그림이었는데, SLOW라는 문구가 함께 적혀 있었다. “이 부근은 천천히 걸어가라는 뜻인가요?” 공원 관계자는 “비무장지대에서나 볼 수 있는 맹꽁이가 종종 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해서 보호를 위해 표지판을 설치했다”고 설명한다. 맹꽁이 보호 표지판은 단순히 차량과 맹꽁이 보호의 의미를 전달함과 동시에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재치 있는 표시였다.

길을 걷다보면 정말 많은 것들이 보인다. 그만큼 보행자에게는 작은 표지판 하나도 많은 의미로 다가온다. 산책의 즐거움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걷는 과정을 즐기는 데 있다. ‘나무가 많아 여름날 그늘이 아름다운 길’, ‘연인들이 프로포즈 많이 하는 길’, ‘밤에 연인 출몰(?)이 찾은 길’. 길을 걷다 이런 표지판을 만나면 누구라도 미소가 떠오르지 않을까?

박혜민 인턴기자 hyeumi@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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