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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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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의 제자인 홍일직고려대교수의 회고.
『하루는 김총리께서 급히 총리실로 들어오라고 하시더군요. 가보니 이 문제를 판단해 보라고 하시던군요. 그래서 고려시대 이규보의 행적을 적은 익재 이재현의「역용비설」을 얘기해 드렸지요.

<이·장파문 잠재우려>
원나라에서 우리 조정에 군사파병 요청이 오면 명분은 찬성해주고 실제는 시간을 끌면서 군사를 보내지 않았던 우리 역사의 경험을 약소민족의 외교지혜라며 마음을 가다듬으시던 김총리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당시 청와대 비서관 B씨.
『그때 11월15일 서울고법에서 이철희· 장령자부부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는 등 이 사건의 여진이 남아있던 시점이었습니다. 정부 내부에선 국민들의 관심을 레바논 파병쪽으로 돌릴 수 없을까하는 정책판단의 유혹이 있었지요 . 경제적 실익이 없고, 중동 강경국가의 반발로 비동맹 외교의 부담이 될수 있다는 점 때문에 파병불가로 결론이 났지만 미국이 우리에게 강력히 파병을 요청했으면 들어줬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미국의요청은 집요하지 않았지요』
김총리는 졸업정원제에 대해 못마땅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문교부측에 폐지를 강조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졸업정원제는 대학의 면학분위기를 고취시킨다는 측면이 있지요. 하지만 학생들의 중도자퇴로 인한 대학 경영문제로 고민하는 일부 사학의 의사가 반영된 제도이기도 합니다. 내가 어떻게 생사람잡듯 학생들을 중도에 자르냐고, 문제가 많다며 고치라고 권유했는데 말을 안 듣더군요. 국보위에서 만든 것이니 곤란하다는 것이었지요』 그는 5·16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에 의해 문교장관으로 발탁된뒤 군부 주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정원 증원을 밀어붙인 경험이 있다.
이런 한계와 역부족을 경험한 탓인지 취임6개월이 지나면서 그의 마음 한쪽에는 사퇴 의사가 자리잡는다. 『82년 연말 이·장사건의 후유증이 어느정도 가라 앉은것 같아 민심 수습을 위해 임명된 내가 더 이상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전대통령에게「제 할 일을 다했으니 물러나겠다」고 했더니 전대통령이「앉아 계시지요. 걱정 마세요」라면서 만류하더군요』(김전총리)
그는 대구 디스코홀 화재사건(83년4월18일)으로 25명이 사망하고 69명이 부상하는 대형 사건때도 그만두려 했었다. 『그만 둔다고 하시기에 총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말린 적이 있지요』(조영길당시비서실장)

<"총리 책임질 일 아냐">
결국 83년10월 아웅산폭파 사건이후 사표를 내고 스스로의 표현대로 총리직에서「졸업」한다. 이학봉수석(민정)에게 나의 사임의사를 대통령에게 여쭤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이수석이「대통령께서 그만 두시면 절대 안된다. 총리가 무슨 책임이 있느냐」고 하시더라더군요. 그래서 (그만 두지 못해) 이거 큰일이구나 생각했는데 이틀후 이수석이 사표를 내셔야겠다고 하더군요. 아마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하고,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판단때문에 전대통령의 태도가 바뀌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장례식이 끝난뒤 전대통령에게 데리고 있던 사람들이 이렇게 됐으니 그만 두어야겠습니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전대통령이 「애쓰셨습니다」고 하더군요』
당시 경호업무와 관계있는 노신영안기부장과 장세동경호실장은 예상을 깨고 유임된다. 「삼고초려」의 분위기를 풍기면서 기용돼 『막힌 것을 뚫겠다』던 김총리의 화려한 취임초기와 대비되는 씁쓸한 퇴진이었다.
이와함께 그의 총리기용이「전대통령이후」문제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한때의 일부 관측도 퇴임과 함께 사라졌다. 『초창기때는 일종의 군사정권적 성격이 있었는데 전대통령의 7년 임기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컴컴한 터널속 상황에서 퇴임이후를 전망하는 것은 당시로선 어울리지 않은 문제입니다. 전대통령도 이에대한 얘기가 일절 없었고 나역시 전대통렁이후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국회에서「전대통령의 7년 단임 의지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이같은 고백처럼 당시 전대통령의 단임 준수를 미지수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전대통령은 노태우민정당대표를 후계자로 임명한뒤 87년7월 민정당 중진들과 저녁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후계자 거명되기도>
『「다음에 군 출신을 안쓰고 민간인을 후계자로 정하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한때 해보고 민간인 출신에게 총리도 시켰지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안보와 국방을 잘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한다」고 후임 배경을 설명하면서 전대통령은 민간인 출신인 김상협·노신영전총리를 후계문제와 연관해 거명한 적이 있습니다』(현민자당 L의원)
이에 대해 청와대비서관 출신 W의원은 『전대통령이 노신영씨를 생각했다는 흔적은 여러군데서 찾아볼 수 있지만 김상협씨를 생각했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의 1년4개월의 재임기간은 대통령제하에서 총리의 실상과 허상을 실감나게 보여주었으며「인간 김상협」의 면모 일부도 그 속에 투영됐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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