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 삭이며 몸 낮추는 민정계/개혁강풍 불자 긴장속 주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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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YS친정체제 구축에 정권교체 한기 실감/“권력의 생리… 섭섭하지만 순응” 자중 뚜렷
김영삼대통령의 인사장풍에 민자당 민정계가 풀잎처럼 눕고있다. 불어닥치는 개혁풍에 최대계파이자 보수·기득권의 뿌리인 민정계는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3일께 「최형우사무총장」을 핵심으로 한 당직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무게중심을 민주계에 맡겨 여당을 박정희대통령 때처럼 강력한 친정체제를 만들겠다는 포석이다.
○…「최형우총장」 체제가 실현된다면 이는 단순한 인물교체가 아니라 권력구도의 개조로 봐야한다. 3당합당으로 호랑이 굴에 뛰어든 김영삼사단은 통치권력을 쟁취했다. 합당의 모양새로 보자면 민정계에도 힘을 나누어줄만 하지만 최형우체제는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민정계는 김 대통령의 당정 완전장악 의도를 눈치채고 있다. 때문에 이번 개편은 상례적인 인물교체가 아니라 자신들에겐 차갑고 혹독한 세력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민정계의 얼굴엔 두가지 반응이 어우러져 있다. 하나는 권력의 생리상 그런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반응이다. 다른 하나는 『민정계지분은 찬밥이냐』는 항변겸 불만이다. 민정계중 YS깃발을 들었던 친민주계는 불평의 강도가 더 크다.
김윤환·이한동·이춘구의원 등 민정계 3대중진은 착잡한 심경으로 변화를 지켜보면서 은인자중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번 당직개편과정에 대해 약간의 허탈감과 섭섭함에 싸여있다고 한다.
그는 『당은 최대계파인 민정계가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그런데 민정계가 밀려나고 있는데다 자신도 협의과정에서 소외되어온 것이다.
김 의원은 지난달초 일본에서 돌아와 김 대통령과 잠시 통화한 이래 「독대」한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반면 민주계 실세 최형우의원은 내각발표 며칠전에 김 대통령과 교감을 나누어 「김덕안기부장」이란 비밀카드까지도 알고 있었다. 김 의원은 최근 2주간 서초동자택에 들어가지 않고 시내호텔에 머무르고 있다.
기대만큼 힘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서 외부인사들의 집단쇄도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영국정부 초청을 받아 이달말 1∼2주정도의 예정으로 출국할 것을 구상중이기도 하다. 방문객으로 붐볐던 그의 여의도사무실은 문이 굳게 닫혀있다.
김 의원을 정점으로 모여있는 YS추대위(경선때) 출신 의원들도 의식적으로 모임을 삼가고 조용히 지내고 있다. 최근엔 전체모임이 한번도 없었고 삼삼오오 골프·식사모임정도라고 한다.
허주(김의원 아호)와 가까운 한 중진의원은 이렇게 진단했다.
『차갑고 매서운 개혁풍이 불기시작했다. 바람이 몰아치면 최대피해자는 민정계다.』
허주계의원들이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저녁 김 대통령­김종필대표의 청와대만찬에서 『당직개편에서 5,6공의 주요인사는 가급적 배제한다』는 원칙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회동뒤 「최형우총장」 얘기가 구체적으로 흘러나왔다. 두사람은 인선뿐만 아니라 당운영자금을 후원회 등을 통해 자체조달하는 방안도 논의했다고 한다.
허주와 함께 차세대 야망을 키우고 있는 이한동의원도 목소리를 내지않고 있는 그는 이달중 『역동정치론』이란 책을 출간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늦추고 있다. 「역동정치」는 지난번 당내경선때 이 의원이 내세웠던 신정치구호다. 이 의원은 별다른 움직임없이 정세를 조용히 관망하고 있다. 외부인사 면담시간을 줄여 교수들도 가끔 만나고 아침마다 염곡동 야산에서 조깅을 한다.
이 의원과 그의 계보중심인 김영구 현사무총장은 섭섭함을 지울수 없다는 표정이다. 김 총장이 대선대책본부장을 맡아 공적을 세웠는데도 입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의원과 가까운 한 중진의원은 『지금은 과도기이니 조용하게 지내는게 상책이다. 김 대통령이 통치자원에서 하는 일이니 순응하는게 도리 아닌가. 하지만 어쩐지 섭섭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춘구의원은 당내세력관계와 연결된 몸짓은 거의 하지않고 있다. 본인이 차세대 권력문제에 대해 별로 의욕이 없기도 하다. 더군다나 컨디션이 불편해 최근엔 10여일간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주도해서 만든 「수요회」 모임은 계속 진행하고 있다.
YS 개혁바람이 워낙 드셀판이어서 『조용히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민정계를 지배하고 있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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