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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술꾼은 대리기사 부른다' 천태만상 대리운전문화 조명

중앙일보

입력

오후 6시20분 허 락씨는 셀폰을 통해 첫번째 주문을 확인한다. 신발장사를 하는 사람이 너무 술에 취해 운전을 할 수 없다는 연락이었다. 그가 쏜살같이 지하철을 타고 고객에게 도착하기까지는 채 15분도 걸리지 않았다.

뉴욕타임스가 한국의 대리운전문화를 조명해 눈길을 끌고 있다. 타임스는 10일(현지시간) ‘한국의 술꾼은 대리기사를 부른다’는 기사에서 직업이 대리운전기사인 허 락씨의 생활을 소개했다.

타임스는 “한국의 대리운전기사는 약 10만명에 달하며 하루 70만명의 고객들을 실어나른다”면서 허씨의 고단한 삶을 통해 한국 대리기사들의 애환을 전했다.

다음은 기사 요약문.

고객을 데려다주는 댓가로 16달러(1만5000원)를 받은 허씨는 “이 세계에선 스피드가 돈이죠. 먼동이 트기전까지 가능한 많은 콜을 받아야하니까요.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만 일합니다. 주 6일제죠”라고 말했다.

허씨의 직업은 술취한 고객을 대신 운전해서 집에 데려다주는 ‘대리기사(Replacement Driver)’이다. 허씨같은 사람들이 서울에는 수만명이 있다. 그들은 네온사인이 물드는 저녁나절 일을 나갔다가 한강에 물안개가 피어나는 새벽녘 퇴근한다.

대리기사는 서울과 기타 도시에서 주요한 직업이다. 그들에 대한 보수는 소비자물가를 측정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약 10만명의 대리기사들이 70만명의 고객들을 실어나르고 있다. 주말인 금요일에는 30% 정도 수요가 늘어난다.

“피크타임은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죠. 하지만 난 아침 7시까지 일합니다. 고질병으로 고통받지만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허씨의 말이다.

‘단합’을 중시하는 한국인들은 저녁이면 팀을 이뤄 회식을 하고 맥주잔에 양주잔을 넣은 많은 ‘폭탄들(Bombs)’을 마신다. 이때문에 경찰은 거리 곳곳에서 음주단속을 벌이고 술취한 운전자들은 면허취소를 막기 위해 차를 버려두고 도망가기도 한다. 불법 주차 벌금이 그보단 낫기 때문이다.

밤근무라는 점 외에도 낮은 직업의 안전성때문에 대리기사들은 직업 만족도가 크게 떨어진다. 욕설을 하고 함부로 하는 고객들도 많다.

“가장 흔한 문제는 고객이 집 근처에서 동으로 가자, 서로 가자하며 횡설수설하는거에요. 많은 이들이 목적지에 닿고도 깨어나지 않는 것도 큰 문제죠”

그럴때면 할 수없이 고객의 지갑을 뒤져서 주소를 알아내거나(이때문에 종종 도둑으로 오인받기도 한다) 고객 휴대폰을 통해 집전화를 알아내기도 한다.

“만취한 고객은 아무리 흔들어도 소용없어요. 아파트 단지에서 수십분을 실갱이하면 일할 시간을 그만큼 잃는거죠. 하지만 꼼짝않고 누워있던 술꾼도 자기 와이프가 와서 ‘일어나!’하고 소리치면 벌떡 일어납니다”

이따금 대중교통편이 전혀 없는 서울 외곽에 고객을 실어나를 때가 있다. 그런때면 주유소나 톨게이트까지 걸어 나와 서울로 가는 트럭에 부탁해서 타고 오기도 한다. 서울로 빨리 돌아와야 새로운 고객을 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차편을 못구하면 24시간 문을 여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새벽5시 첫 버스를 탑니다. 승객중 80%는 저같은 사람이에요. 지친 얼굴 표정만 보면 알 수 있거든요”

허씨는 지하철 종각역 주변 서점에서 다른 십여명의 대리기사들과 함께 대기한다. 고객의 전화가 오면 최대한 빨리 도착해야 한다. 대개 고객들은 여러 대리기사에 연락하기때문에 먼저 찾은 사람이 임자가 된다.

많은 대리기사들은 캐시어나 학생 세일즈맨 등 가외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파트 타임 잡이다. 부부가 팀을 이뤄 하는 경우도 있다. 남편이 고객을 데려다주고 난후 아내가 뒤따라가 태우고 오는 식이다. 또 여성고객들은 여성대리기사를 선호한다.

허씨는 3년전 부도로 집을 잃고서 이 일을 정식직업으로 택했다. 그가 한달에 버는 돈은 2400달러(약 220만원) 정도. 여러 비용을 제하고 그는 아내와 아들, 어머니가 사는 서울 교외에 있는 집으로 1천달러(약90만원)를 보낸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더 좋은 직업이 나올 때까지만 이 일을 하려고 합니다. 자립해서 내 가족과 합칠 수 있을 때까지 술취한 고객들을 열심히 데려다 줘야죠”

【뉴욕=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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