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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경쟁력 과제’ 영어 말고도 많은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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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강원도 양양·정선에 영어 체험학습장이 생기고 2009년 3월 양구에 외국어고등학교가 개교를 앞두고 있다. 1984년 서울에서 첫 입학생을 받은 외국어고가 23년이 지난 뒤 드디어 강원도의 오지까지 점령한 것이다. 초·중·고교생의 해외유학이 최근 6년 사이 열 배 이상 늘어났으며, 영어교육을 위한 사교육비가 14조원으로 일본의 5조원에 비해 세 배 가까이 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토플 등 외국어시험 응시료가 1년에 1000억원을 넘나든다고 한다. 교육부에서도 2010년까지 전국의 모든 중학교에 원어민 영어교사를 배치하고 수준별 영어 교과서를 개발해 보급하기로 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 조기 교육을 하고, 인천·부산에서는 ‘영어몰입교육(모든 교과를 영어로 수업)’ 등도 준비하고 있다.

경기도 인근에 영어 체험마을을 한 군데 설립하는 데 약 1000억원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그 돈이면 전국의 학교 시설을 바꿀 수 있다. 6월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은 다가오는 문화의 세기를 맞아 예체능 교육 혁신 방안을 제시했다. 각 학교의 음악실에 방음시설 설치, 멀티미디어 기자재와 각종 악기 구입, 미술실 개·보수와 그래픽 전용 컴퓨터, 감상용 프로젝터를 배치하고, 학교 운동장에 스프링클러와 수영장까지 설치하자는 것이다. 그는 이 사업에 향후 5년간 약 1000억원을 산정했다.

전국적인 영어 열풍에 많은 우려와 부작용이 지적된 바 있다. 하지만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의 시대적 과제가 영어뿐일까. 노사 문제와 소외계층의 문제, 그 밖에도 환경, 고령화, 육아와 저출산, 양극화, 이민자 문제 등은 어떤가. 과연 이런 문제들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 없이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에 관심을 갖는 지자체나 정부기관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세대가 2만 달러 시대에 도달하는 데 어려운 점이 영어였다면 국민 소득 3만~4만 달러 시대를 여는 데 꼭 필요한 다음 세대의 과제는 이러한 것들이 아닐까 한다.

대표적 복지국가 중 하나인 독일에 단지 교육만을 위한 외국인 마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덴마크에서 토플 원서 접수 때문에 서버가 다운되었다면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프랑스에서 원어민 영어 교사가 활약했는가. 스웨덴에도 외로움을 술로 달래는 기러기 아빠가 있었는가.
 
오늘날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그들은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전인 1만 달러 시대 때부터 그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극복해 현재의 복지국가를 이룩했다. 현재 2만 달러 시대를 통과하는 우리 역시 같은 고민을 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라고 본다.

*본 난은 16개 시·도의 오피니언 리더 50명이 참여한 중앙일보의 ‘전국열린광장’ 제5기 지역위원들의 기고로 만듭니다. 이 글에 대해서는 ‘전국열린광장’ 인터넷 카페 (http://cafe.joins.com/openzone) 에 의견을 올릴 수 있습니다.

강범희 원주시민연대 운영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