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판 햇볕' 물 건너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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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나라당이 상호주의 완화를 골자로 4일 발표한 새 대북정책('한반도 평화비전')이 당내에서 역풍을 맞고 있다.

당 지도부가 새 정책을 내놨을 때부터 김용갑.김기춘 의원 등 보수 성향 의원들은 강력히 반발했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후보(빅2) 측에서 모두 새 정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보수파들의 항의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는 듯했다.

하지만 이회창 전 총재가 5일 "한나라당의 현실 인식에 문제가 있다. 지난 10년간 상호주의를 도외시하고 일방적인 대북 지원을 했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개방.개혁으로 나왔느냐"고 비판하면서 이상 기류가 감지됐다. 여기에다 박 후보가 8일 "(한반도 평화비전은) 상호주의를 포기하고 핵문제를 분리해 여러 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고 말하면서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9일엔 이 후보마저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이 후보는 박형준 대변인을 통해 "당의 예비후보로서 당의 공식 입장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구체적인 방법론상에서 (당과 캠프가) 부분적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본인의 '비핵 개방 3000구상'은 북한이 핵 폐기를 전제로 개혁.개방에 나설 때 10년 안에 북한의 국민소득이 3000달러가 되도록 지원하는 것"이라며 "북한의 비핵화 과정과 개혁.개방 단계에 맞춰 경협과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상호주의를 적용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새 대북정책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정형근 최고위원은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특정 캠프에서 '상호주의를 포기해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며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상대적 상호주의가 있어야 하며 튼튼한 국방과 굳건한 안보 위에서 대북정책의 유연성과 활력성을 줘야 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당내에선 빅2가 이처럼 제동을 걸고 나섬에 따라 새 대북정책에 상당한 손질이 불가피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빅2의 이 같은 입장 선회는 보수적 색채가 강한 대의원.당원 표를 겨냥한 당내 경선용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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