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제 발등 찍은'노동계 조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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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비정규직 전환 기간은 3년으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3년쯤이면 숙련공이 돼서 기업도 부담 없이 전환을 해줄 수 있습니다."

2005년 8월. 하갑래 당시 노동부 근로기준 국장(현 단국대 교수)은 정부 과천청사 자신의 방을 찾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정규직 법안을 놓고 노동계.경영계와 협상을 하며 골치가 아프다며 속내를 털어놓으면서다.

경영계는 이런 노동부의 판단에 공감했다. 황용연 당시 한국경영자총협회 법제팀장(현 기획팀장)은 "당시 정부안은 경영계로서도 합리적인 비정규직의 처우개선 방안으로 평가했다"고 기억했다. 노동계는 정부안을 묵살했다. 2005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근무 기간을 1년으로 줄이자"고 요구했다. 기업이나 노동시장 상황은 고려치 않고 비정규직으로 1년만 근무하면 무조건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란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열린우리당 간사였던 이목희 의원조차 "막무가내다. 해도 너무 한다"며 노동계를 비판했을 정도다.

정부.경영계와 노동계의 입장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그해 12월 합의된 비정규직 전환 기간은 3년도 1년도 아닌 2년이었다. 양측이 주장하는 중간 숫자를 끼워 넣은 것이다.

이 법안은 다음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이 1일부터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이다. 법이 시행되자마자 곳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랜드가 대표적이다. 사용자 측이 비정규직 전원을 계약 해지하고 외부 용역회사 사람을 쓰기로 한 것이다.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법이 그들을 직장 밖으로 내쫓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했다.

김이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업환경이 급변하는데 2년 만에 숙련공으로 키워내기는 힘들다"며 "어차피 숙련공으로 키우지 못할 바에야 여력이 안 되는 기업들은 경영합리화를 위해 외주를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도 최근 "2년으로 제한된 고용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법개정 필요성을 제시했다.

비정규직법의 문제점은 2년 뒤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경총이나 중소기업들은 "비용 때문에 정규직 전환을 포기하는 기업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지금이라도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더 이상 약자를 위한다는 법이 칼날이 돼 그들을 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기찬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