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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위험 공정 과감히 자동화(신명나는 사회: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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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현대자 엘란트라 공장/차설계때부터 작업장여건 고려/「불량률 제로」소비자신뢰 구축/시판 3년만에 “연 판매량 최고”
작년 12월초 현대자동차 노사간 합의된 임금협상내용에 대한 울산공장노조원 찬반투표결과가 한동안 화제가 됐었다.
찬성자수가 투표참가노조원 2만8천2백83명의 55.9%인데 비해 엘란트라를 생산하는 제3공장의 찬성률이 58.8%로 유독 높게 나온데다 쏘나타나 엑셀을 만드는 제1,2공장의 찬성률이 50%에도 못미친 결과와 두드러진 대조를 보였기 때문이다.
엘란트라 생산라인의 작업분위기가 뭔가 다르긴 다르다는 이야기가 현대자동차내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 바로 이 「분위기」야말로 엘란트라의 성공을 설명할 수 있는 결정적 열쇠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작년 한해 국내외에서 모두 21만2천여대를 팔아 90년 11월 출시된지 불과 3년만에 국내 최고승용차의 자리에 뛰어 오른 엘란트라의 성공비결에 대해 『가격에 비해 성능이나 디자인이 원체 뛰어나다』『마키팅전략이 잘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으레 따른다.
그러나 좀더 캐들어 가보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근로자에게 편안한 일터를 제공,제품의 충실도 향상으로 연결시킨 것이야말로 진짜 원인이 아니냐는 이야기다.
2만개가 넘는 부품이 조립된 자동차만큼 「불량」노이로제에 걸려있는 재품은 없다.
불량품이 잦은 차로 소비자들에게 한번 낙인찍히면 만회하기가 그 어느 제품보다 어렵다는 것을 숱한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아무리 「잘 나가던」차도 노사분규를 겪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상당기간 고객의 차가운 외면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엘란트라는 고성능 신세대차라는 「첨단」이미지로서 뿐만 아니라,불량률 제로라는 「고전적」이미지로도 두터운 신뢰를 확보한 셈이다.
엘란트라의 개발주역들은 차설계때부터 소비자뿐 아니라 차를 실제로 만들어낼 생산자,즉 근로자들을 염두에 두었다고 말하고 있다.
근로자들이 「눈을 감고도」자기가 맡은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공정의 각 단계를 보다 표준화,정밀화시켰다는 설명이다.
엘란트라 마키팅계획을 지휘한 안용모차장은 『자동차야말로 생산라인 근로자들의 심리상태가 제품마감새를 크게 좌우한다』며 『출근직후와 퇴근직전의 마음가짐이 다르게 마련이겠지만 근로자 기분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자동화율 95%는 단순히 인력절감만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근로자들이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태에서 일할 맛을 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는 점이 함께 고려됐다.
예컨대 복잡하거나 까다로운 일,쇳가루가 많아 건강에 해롭거나 위험한 일 등은 자동화하기 부적합한 공정이라도 과감히 기계로 대체했다. 이에 따라 위험도가 가장 높다는 프레스·차체공정 등이 99% 자동화돼 근로자들에겐 나사 조이는 일만 남겼다.
이같은 과정은 『책상에서 설계도면을 아무리 훌륭하게 그려내도 근로자들의 손에 맞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신조아래,우수한 엔지니어들과 손에 기름때를 직접 묻히는 베테랑 근로자들간에 부단한 의견교환과 피드백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은 물론이다.
엘란트라 시판초기의 생산전략도 주목할 만한 구석이 있다.
신형차가 나오면 초기 호기심수요가 일게 마련이어서 물량을 맞추다보면 무리한 생산독려가 많지만 엘란트라는 물건이 달린다는 일선영업소의 원성에 귀를 틀어막고 근로자숙련도가 정상궤도에 이를 때까지 출고량을 제한했다. 몇대 더 팔려다 불량품이라도 나와 첫인상을 흐릴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였다.
『기계는 밤새 돌릴 수 있지만 무리하게 생산목표에만 매달리다 보면 제품에 뒤탈이 나게 마련』이라고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강조했다.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기」식의 현대그룹 경영관리 컬러를 감안하면 참으로 신선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근로자의 신바람은 「열심히 하자」는 단순한 외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근로자가 치밀하게 결합하는 가운데서 발휘될 수 있다는 교훈을 엘란트라의 성공사례는 보여주고 있다.<홍승일기자>
◎경영혁신 이렇게 해야 한다/삼원정공 초관리운동 도입 “새바람”/권한이양·동기부여 병행해야 성과
『이대로는 안된다,뭔가 바꿔서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경쟁사가 저렇게 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 당하지 않을까』….
90년대 들어 대내외적 경쟁이 치열해지는 등 산업여건이 어려워지는데 대한 돌파구로 국내기업들이 「경영혁신운동」을 채택하게 된 동기들이다.
한국능률협회의 조사로는 지난해말까지 1천개기업중 70%,매출액기준 1백대기업중에는 84개가 이같은 운동에 착수했다.
그럴싸한 영어합성어에다 2000년,21세기를 붙인 거창한 이름이 나붙고 품질관리(QC)·품질경영(QM)·고객만족경영(CS)·적재적소방식(JIT) 등 외국에서 성공했다는 각종 선진경영관리기법이 앞다투어 도입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영혁신운동을 펼친 업체 가운데 대부분이 기여했던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작 신바람을 내고 있는 곳은 「초관리운동」이란 다소 생소한 이름을 내건 자동차부품업체인 삼원정공(대표 문학무) 등 몇몇 중견업체들이다.
삼원정공의 경우 1년 연봉을 초로 나눠 직급별로 초당 2∼3원을 매긴뒤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자는 산뜻한 아이디어로 출발,모든 분야에서 효율과 합리화를 철저히 추구해 제품가격은 10년전보다 20∼30% 인하,지난해 임금은 17.5%인상,근무시간은 주54시간에서 10시간 단축하는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이 때문에 벌써 이 회사를 소개하는 책이 나와 불티나게 팔리고 전경련 등 각종 단체의 사례발표회가 잇따르고 많은 업체들의 공장방문요청이 쇄도하고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기라성같던 그많은 대기업과 나머지 기업들의 경영혁신운동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난해는 5대 더하기 운동을 한다고 법석을 피우더니 올해는 회장이 신년사에서 「신바람을 내자」는 한마디했다고 벌써부터 신바람운동을 위한 별도의 경영혁신팀을 구성한다,표어를 공모한다고 난리입니다.』
대기업인 D사의 김모대리(35)는 『어디가서 내림굿이라도 받지 않는 이상 신바람날 이유가 없는데 어떻게 신이 납니까』라고 항변한다.
경영난으로 인력을 대폭 줄인 중견기업인 K전자의 생산관리담당 이모씨(29)는 회사측이 벌이고 있는 경영혁신운동이 아예 일할 맛도 없앴다고 한다.
『갑자기 경영혁신팀을 만든다고 인력을 차출해 업무량이 더 많아졌고 그다음부터는 혁신팀의 명령조인 자료요구로 아무일도 못하더니 어느날 그래프가 잔뜩 그려진 지침서 몇장 벽에 붙이고는 운동을 시작한다고 해요. 내용인즉 예상대로 더욱 감량경영하자는 것이었는데 그러면서 회사는 이 운동에 전산화가 필수라고 컴퓨터요원까지 몇명 뽑더군요.』
국내 연구단체 등 각계에선 많은 기업들이 근본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겉만 바꾸려는 방법상의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이 구호성 캠페인 정도로 끝나거나 일시적인 효과밖에 없는 「원가절감」「근로시간연장」 등과 같은 손쉬운 차원의 운동에 만족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최근 잇따라 도입하고 있는 일본의 「고객만족 경영」뒤에는 ES(종업원 만족)가 전제돼 있는 것』이라며 『경영혁신운동을 위해서는 급여 등 복리후생,성취감을 느끼게 하기 위한 권한이양,회사발전이 자신의 발전이라는 의식고취 등의 동기부여요소가 납득될 수 있는 수준으로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장기간에 걸친 철저한 사전의식교육 ▲경영층의 솔선수범 ▲혁신운동기획팀에 대한 권한부여가 뒤따라야 조직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기득권상실을 우려하는 계층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방해를 제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삼원정공의 경우 종업원이 1백20명 남짓하지만 운동시작전에 6개월에 걸친 사전교육을 했었고 지난해 능률협회의 경영혁신대상을 수상한 대우조선은 부사장이 먼저 공장청소를 했을 정도였다.
현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유공의 경영혁신팀 관계자는 『초기에는 이같은 점들이 뒷받침되지 않아 동료들로부터 「당신만 회사위하냐,그래 용돼라」는 식의 반응을 얻었고 이 때문에 「어차피 안될 것,면피성 보고서로 때우고 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었다』고 실토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용학교수는 『산업계의 신바람은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장치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며 『각 기업체들의 경영혁신운동도 과거 대량생산체제아래서 굳어진 양적평가의 속성을 버리고 질적가치를 우위에 둬야 급변하는 사회에 대응하고 진정한 신바람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효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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