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국시 집』<서울 성북동>|얼큰한 국물…어머니 손맛 물씬|심영환<농협중앙회 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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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경남 의령태생인 나는 가끔 고향이 그립고 어머니가 생각날 때 친한 친구를 불러 찾아가는 곳이 있다.
세밑에는 밀밭 이랑에서 동네축구를 하며 자라 온 촌사람이어서 그런지 어머님의 손맛과 정성을 담아 밀로 빚은 국시 맛이 그리워 찾아가는 것이다.
푹 삶았으나 쫄깃쫄깃한 문어와 쇠고기 수목 한 접시에 소주 및 잔을 곁들이면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다. 풍성함과 감칠맛이 그만이고, 친구들과 어울려 허물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옛 얘기에 취할 수도 있어 좋다.
평소 나의 예찬론에 따라 북악 테니스회원 모두가 단골이 돼 버린 이 곳은 혜화동 로터리의 주유소에서 성북동 쪽으로 조금 올라가 과학고등학교 후문에 있는「성북동 칼 국시 집」
(743)-5640·대표 김복지)이다. 처음에는 찾기조차 힘든 집이지만 아주머니가 주인이고 주방을 맡아서인지 소박한 인심이 넘쳐흐르고 있다. 찾아오는 손님들도 오순도순 옛 얘기에 취해있어 정감이 흐르는 분위기다.
한 그릇에 3천원 하는 칼 국시를 들이키며 주룩주룩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씻어내는 모습도 정겹다. 삶은 문어에 수육안주로 소주한잔 곁들이고 칼 국시까지 풀 코스를 즐겨도 한 명에 만원도 안될 정도여서 값도 싸다.
『어느 때부터인가 수입밀가루로 반죽을 하게 돼 아쉽다』는 아주머니 말씀에 직업상 나는 특별히 공감이 간다. 그리고 우리 쌀도 밀가루처럼 이 땅에서 사라져 버리고 찾기 힘들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섬뜩해진다. 과연 우리 토종 밀로 만든 그 구수한 국시를 언제 다시 맛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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