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끝없는 경영권 분쟁 두 회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7호 21면

오양수산 서명 세 번한 위임장 놓고 공방

서울 성북동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정법사. 6일 오전 이곳 대웅전에선 고(故) 김성수 오양수산 회장의 유족들이 모여 1시간 넘게 재(齋)를 올리고 있었다. 휠체어에 의지한 미망인 최옥전씨를 비롯해 네 딸과 두 며느리가 숙연하게 재를 모시는데, 이들이 장례식 파행 사태를 겪었던 사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주지인 법진 스님이 “입차문내 막존지해(入此門內 莫存知解·절 안에 들어와서는 세간의 이해관계를 털어버려야 한다)”라고 말한 그대로다.

그러나 절 문을 나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고 김 회장의 장남인 김 부회장 측이 고인의 자필 서명이 담긴 위임장이 ‘문제투성이’라며 의문을 제기하면서 오양 사태가 새 국면을 맞은 것. 3월 27일자로 작성된 위임장에는 고인이 자신의 주식 처분 대상과 가격, 대가를 포함한 모든 권한을 법무법인 충정의 장용국·조용연 변호사에게 일임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근거로 김 부회장을 제외한 다른 유족들은 고인의 사망 전날인 지난달 1일, 회사를 127억원에 사조산업 자회사인 사조CS에 넘겼다.

김 부회장 측은 ▲고인의 서명이 세 개나 되고 ▲그 서명이 감정 결과 위조라는 판정 ▲위임 주식 수가 실제와 다르고 ▲통상적인 계약과 달리 공증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위임장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며 법적 문제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사진 참조>

고 김 회장의 위임장엔 세 개의 친필 서명이 있다. 김미경 한국문서감정원 소장은 “위임장에 서명을 세 번이나 하는 사례는 아주 드물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아무리 몸이 아파도 사람은 고유의 필체를 바꾸지 않는 습성이 있다. 지난해 고인이 서명한 신탁증서와 대조한 결과 획이 서로 반대였다”며 두 개의 서명은 다른 글씨체라고 감정했다. 또 위임장에는 고인의 주식 수가 122만2074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100만6439주다. 김 부회장 측은 또 “100억원대 거래를 일임하는 위임장에 공증이 없다는 것도 상식적인 통념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장용국 변호사는 “위임장은 내가 직접 받은 것”이라며 “당시 회장님의 기력이 약해 두 번이나 서명을 더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공증 역시 자신이 변호사인데 고인이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 굳이 무리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주식 수가 틀린 것은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 부회장 측의 전재기 변호사는 “거동이 힘들었다면 몸이 정상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고인의 진정한 의사가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전 변호사는 “서명에 문제가 있다면 위임장은 원천 무효”라고 강조했다.
현재 법원은 김 부회장이 사조 측에 제기한 주식매매 계약 무효 가처분 신청에 대해 김 부회장의 상속 지분(13만4192주)에 대해서만 받아들인 상태다. 사조 측은 김 부회장에게 이 지분을 함부로 다른 곳에 넘기지 말라는 가처분 소송을 냈다. 지난달 29일에는 김 부회장의 이사 해임 등을 안건으로 하는 임시주총 소집 신청서를 내기도 했다.  

동아제약 몸값 높아진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동아제약 경영권 분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강신호 회장의 차남인 강문석 이사는 2일 유충식 이사, 한국알콜 등과 함께 동아제약 이사회가 자사주를 매각하고 교환사채(EB)를 발행키로 의결한 데 대해 반발했다. 그는 ‘이사회 결의 효력정지 및 주식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북부지방법원에 제출했다.

같은 날 동아제약 이사회는 648억원 규모의 자사주 74만8440주(7.45%) 전량을 DPA·DPB라는 해외 법인에 매각하고, 이를 근거로 8000만 달러(736억원)의 EB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해외출장 중인 유충식 이사를 제외한 6명의 이사가 이사회에 참석했고, 강문석 이사를 제외한 5명의 찬성으로 의결됐다. 회사 측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부과받은 350억원의 과징금을 마련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 차원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강 이사로선 간단한 사안이 아니었다. EB 발행으로 자사주 의결권이 살아나고 강 회장의 4남인 강정석 대표 측이 이를 우호세력으로 확보할 경우 표 대결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복형인 강 이사와 지분 경쟁을 하고 있는 강 대표로선 자사주 의결권을 되살릴 수 있는 길을 마련한 셈이다.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강 이사는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취지에 반대하지 않지만 시장과 주주가 인정하는 다양한 자금조달 방법이 있는데 굳이 복잡한 방법을 택해 회사에 부담을 줄 이유가 없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이사회가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사실은 특정 우호세력에 자사주를 이전하려는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강 이사 측의 가처분 신청을 두고 재계에선 “허공에 대고 주먹질하는 격”이라고 비유한다. 이사회 절차에 문제가 없었고 조달금리가 연 3.95~4.1%라면 회사 측의 불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EB 매각이 끝난 뒤라 가처분 소송에서 승소해도 상황을 되돌릴 수 없다. 강 이사 측은 “특정 세력이 시장과 주주를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목적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번 동아제약 분쟁은 ‘박카스 3세’ 간 힘겨루기가 본격 점화됐다는 의미가 있다. 2개월여의 지분 경쟁 끝에 동아제약에 복귀한 것이 강 이사의 ‘판정승’이었다면 이번 EB 발행은 강 대표 측의 ‘우세승’이 될 것이다. 6일 현재 강 이사 측 우호지분은 15.71%. 강 대표 측 역시 13~15%대로 추정된다. 여기에 자사주까지 더하면 20%대로 늘어난다. <표 참조>

이럴 때일수록 몸값이 높아지는 인물이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이다. 연초 동아제약 주식 6.16% 매수를 공시하면서 ‘깜짝 등장’한 임 회장은 향후 동아제약 경영권 분쟁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임 회장이 강 이사 측과 손을 잡으면 기존의 판도가 역전된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선 박카스판 ‘나당 연합’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신라가 고구려·백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당나라와 제휴했듯 강 이사 측이 임 회장에게 러브콜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임 회장은 7일 현재 중국 베이징 출장 중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