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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blog] 경기장에 웬 검은 장막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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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세 이하(U-20) 월드컵 축구대회에 출전 중인 한국팀 경기를 눈여겨 보신 분이라면 본부석 왼쪽 골문 뒤로 검은 장막을 봤을 겁니다. 장례식장도 아닌데 검은 장막이라니.

그것은 대회장인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경기장의 고단한 역사 때문입니다. 장막 뒤는 휑한 콘크리트 구조물과 빈 광고판뿐입니다. 검은 장막은 바로 이를 가리기 위한 것입니다.

몬트리올 올림픽경기장은 이름처럼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을 위해 세워졌습니다. 레슬링의 양정모(동아대 교수) 선수가 해방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대회입니다. 경기장은 개폐가 가능한 세계 최초의 '리트랙터블' 지붕으로 설계(첫 가동은 88년)됐고, 65t의 지붕을 들어올리는 175m짜리 타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사형 구조물입니다.

경기장은 올림픽이 끝난 이듬해인 77년부터 미 프로야구(MLB)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홈구장으로 사용됐습니다. 이를 위해 6만5000석의 종합경기장은 1만2000석을 떼내고 야구장으로 변신했습니다. 그런데 2004년 엑스포스가 연고지를 미국 워싱턴DC로 옮기면서 팀 이름도 워싱턴 내셔널스로 바꿨습니다.

집주인을 잃은 경기장은 살길이 막막해졌습니다. 결국 종합 전시공간으로 변신을 시도합니다. 각종 행사의 편의를 위해 외야석을 뜯어냈습니다. 장막으로 가린 그곳입니다. 그나마 봄부터 가을까지만 문을 열 수 있습니다. 99년 1월 쌓인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한 지붕이 무너진 이후 실내경기장임에도 겨울에는 문을 닫습니다.

2005년에는 경기장 바닥에 깔린 인조잔디까지 떼내 100만 캐나다달러(약 9억원)를 받고 밴쿠버에 팔았습니다. 그래서 콘크리트 바닥이 됐는데 U-20 월드컵을 치르기 위해 몬트리올 시가 임시로 인조잔디를 깔았습니다. 한국팀이 첫 훈련을 했던 지난달 27일에도 인조잔디 설치작업은 진행 중이었습니다.

경기장의 별명은 '더 빅 오(The Big Owe)' '더 빅 미스테이크(The Big Mistake)'입니다. 70년 설계 당시 예상했던 건설비용은 1억3400만 캐나다달러였지만, 설계 변경과 각종 사고 때문에 최종 비용이 16억1000만 캐나다달러로 불었습니다. 10배가 넘었죠. 올림픽 개최 30주년인 지난해 말에야 빚을 모두 갚았답니다. '큰 빚' '큰 실수'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이 붙은 이유입니다.

몬트리올=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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