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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냐 문화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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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우리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돈과 문화다. 돈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받아들여지고, 문화 또한 강제나 구속에서 벗어나 개인적 욕망을 좇는 영역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돈과 문화는 자유로움을 원하는 우리의 욕망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돈과 문화의 공통점은 여기까지일 뿐이다. 돈부터 살펴 보자. 돈이 자유와 맺는 관계는 이중적이다. 돈에서는 자유의 냄새가 풍기지만, 동시에 억압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미래의 자유를 얻기 위해 현재의 자유를 희생해야 하는 ‘돈벌이의 역설’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능력, 또는 자유를 얻기 위해 우리는 돈을 원한다. 그러나 억만장자 부모를 두었거나 거액의 로또에 당첨된 경우처럼 억세게 재수 좋은 경우가 아닌 바에야 돈을 벌려면 일해야 한다. 끊임없이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쉽게 말하자면, 머리를 쥐어짜내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근육을 지치게 해야 어느 정도 돈을 만져볼 수 있다. 돈은 자유시간을 포기하고 육체적·정신적 희생을 감수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돈벌이라는 과정은 피하고 그 결과인 돈만 갖고 싶어한다. 돈은 좋지만 돈벌이가 요구하는 희생은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은 하지 않고 돈만 챙기려는 도둑의 심보나, 단 한 건으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대박 집착증이 생겨난다.

 돈이 두 얼굴을 갖고 있는 반면 문화의 모습은 한결같다. 문화에서 우리는 자유로움과 유포리아(Euphoria)의 향기를 맡는다. 문화는 삶의 여유에서 피어난다. 직장일이나 가사일과 같은 주어진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문화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우리가 읽는 책, 보는 영화, 찾는 공연이 매번 ‘문화적’이고 만족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속았다는 느낌이 들어 본전 생각이 절실할 때도 있다. 그러나 문화는 일단 노동의 반대편에 위치한다는 것만으로도, 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좋은 것이다. 그 어떤 형태로든 문화를 향유한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자유의 싱그러움을 머금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왜 문화를 마다할 것인가. 시간이 없다, 돈이 없다, 또는 소양이 없다는 것을 핑계 삼아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한탄만 할 것인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문화는 돈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해 왔다. 지난 시절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지상과제였던 탓에 돈의 논리가 문화 논리를 억눌러 왔다. 문화 얘기를 해도 실은 문화가 아니라 문화를 이용한 돈벌이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8372달러라지만, 아직도 먹고 살기가 빡빡한 사람들이 숱한 상황이니 이해할 만하다.

 정작 문제는 돈의 능력을 과신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돈으로 문화를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불행히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문화상품일 뿐이다. 경제적 여유가 ‘문화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화가 가져다줄 수 있는 자유와 해방감, 만족과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돈벌이 마인드로부터 멀어질수록 문화의 즐거움은 커진다.

 지금 우리에게 문화는 돈의 논리에 태클을 건다는 이유만으로도 소중하다. 돈의 논리가 질보다는 양, 과정보다는 결과, 가치보다는 생산성을 앞세운다면 문화의 논리는 정확히 그 반대다. 문화는 심층에서부터 돈의 논리에 저항함으로써 돈이 지고지선(至高至善)이 아니라 필요악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문화가 경제라고 알려진 돈의 세계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잠시나마 돈을 잊고 문화의 세계에 빠진다면 우리 삶은 좀 더 다채롭고 활기찰 것이다. ‘소유냐 존재냐’라고 물었던 에리히 프롬식으로 표현하자면 ‘돈이냐 문화냐’라는 질문을 때때로 스스로에게 던져 보면 어떨까.
 
 
곽한주 동아방송예술대 초빙교수 문화비평가

 ◆약력:서울대 철학과, 미국 남가주대 철학박사(영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