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63. 그레이엄 마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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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골프 코스 설계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레이엄 마쉬.

 내가 필드에서 가장 많이 상대한 외국인 선수는 호주의 그레이엄 마쉬다. 우승컵을 놓고 맞대결을 한 것 만도 몇 번이나 될 정도로 끈질긴 인연이었다.

  아시안 서키트에서 이름을 날린 그는 한국에도 여러 번 왔다. 1997년 US시니어오픈 우승을 포함해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에서 통산 6승, PGA투어에서 1승을 올린 국제적인 선수였다.

 나는 73년 일본 구스와오픈에서 마쉬와 잊지 못할 일전을 치렀다. 대회는 총 3라운드로 진행됐다. 마지막 라운드에 나설 때 내 뒤로 다섯 팀이 있었다. 나는 10위권 밖에 머물러 우승과는 거리가 먼 듯했다.

 그런데 마음을 비운 덕분이지 3라운드에서 훨훨 날았다. 7언더파 65타를 쳐 데일리 베스트를 기록했다. ‘5위 정도 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호텔로 가려고 하는데 일본 친구들이 “혹시 모른다. 지금 가면 안 된다”며 나를 붙잡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순위는 치솟았다. "어, 어”하며 기다리는데 두 팀이 남았을 때 나보나 성적이 좋았던 선수들이 순위판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와 동타였던 일본 선수는 파3인 18번 홀에서 보기로 무너졌다. 마쉬는 17번 홀에서 보기를 기록해 나와 동타가 돼버렸다.

 나는 그 골프장에서 가장 긴 625야드 파5 홀에서 마쉬와 연장전을 치렀다.

 앞바람에 옆바람까지 불었다. 세컨드 샷까지 마친 상태에서 나는 150야드를, 마쉬는 125야드를 각각 남겼다. 거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5번 아이언을 잡은 나는 특기인 펀치샷을 낮게 깔아쳤다. 공은 그린 한복판에 떨어졌고, 홀까지 6m 가량 남은 버디 기회가 왔다.

 마쉬가 흔들리는 듯했다. 그는 풀을 뜯어 바람 방향과 세기를 가늠해보더니 클럽 두 개를 놓고 저울질을 했다. 7번과 8번을 갖고 고민했던 것 같았다. 그가 세 번째로 샷 한 공은 하늘로 높이 붕 뜨더니 그린 앞 벙커에 푹 박혔다. 승부는 결정됐다고 생각했다.

 마쉬의 벙커샷은 내 공보다 핀에서 더 먼 곳에 떨어졌다. 마쉬는 파를 하려고 아주 신중하게 퍼팅을 했지만 공은 홀을 30cm쯤 지나 멈췄다.

 하지만 마쉬는 나를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마크를 하고 나의 퍼팅 실수를 기다렸다. 내 공은 들어갈 듯하다 홀 앞에서 멈췄다. 그래도 그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보기 퍼팅을 하고는 내게 마무리 퍼팅을 요구했다. 관중석이 웅성거렸다.

 “공을 정성껏 놓고 폼을 멋지게 취하라.”
 일본 기자들은 어느새 내 편이 돼 있었다. 나는 한 뼘짜리 파 퍼팅으로 마쉬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그는 경기에 지고 매너도 진 것이었다.

 마쉬는 코스 설계자로 변신했다. 충북 청원군에 있는 실크리버골프장이 그의 작품이다. 구스와오픈 땐 그가 참 얄미웠다. 하지만 세월은 모든 것을 잊게 해 줬다.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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