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앞둔 불 뇌물스캔들/불 시사주간지 『르포엥』서 폭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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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북 양각도호텔 건설공사 관련/불 기업 미테랑친구에 거액주고 정부 로비/빚 못갚고 있는 북한에 차관 제공해줘 수주
프랑스의 한 건설업체가 평양시내 양각도호텔 공사수주와 관련,거액의 커미션을 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의 한 측근인사에게 상납한 것으로 밝혀져 지난 87년이후 중단상태에 있는 평양 양각도호텔 공사가 총선을 앞둔 프랑스정가에 새로운 정치스캔들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은 프랑스 집권당인 사회당의 정치자금 조달비리를 파헤쳐 일약 유명해진 티에리 장 피에르 예심판사가 수사를 직접 지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모으고 있다.
프랑스의 시사주간지 르포엥 최신호(1월30일자)가 폭로한 바에 따르면 이 사건은 미테랑대통령의 개인적 친구로 지난 89년 사망한 로제 파트리스 플라가 프랑스정부에 손을 써 프랑스 건설업체인 CBC가 북한의 일설비장비회사와 합작으로 양각도호텔 건설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신 이 업체로부터 거액의 커미션을 은밀한 방법으로 챙긴 내용으로 요약되고 있다.
외국관광객 유치를 위해 북한당국은 평양시내 한복판에 40층 규모의 호텔을 건설키로 하고 지난 80년대초 프랑스 건설업체를 상대로 합작건설 참여의사 타진에 나섰다. 5억5천만프랑(약 1억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이 대규모 공사에 관심을 보인 프랑스회사가 바로 CBC사.
그러나 당장 건설자금이 없는 북한은 참여국의 차관제공을 합작조건으로 내세웠다.
이미 프랑스정부에 진 빚도 못갚고 있는 북한에 프랑스정부가 신규차관을 제공할 리는 만무한 일.
프랑스 재무부산하의 대외무역지급보증기관인 코파스(프랑스 대외교역보증회사)는 이 공사와 관련한 신규차관 제공은 불가하다는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수주기회를 놓치게 된 CBC에 구세주로 나타난 사람이 플라.
미테랑대통령과 절친하며 돈많은 기업인으로 알려져 있는 그의 입김은 막강한 신통력을 발휘,우선 북한의 기존 채무에 대한 몇년간의 상환기간연장 조치를 프랑스정부로부터 얻어내 신규차관이 가능한 발판을 마련해냈다. 이 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기존외채에 대한 원리금상환 약속을 제대로 안지키자 코파스는 또다시 신규차관 불가를 선언했다. 그러나 실무기관인 코파스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휘관청인 재무부는 5억5천만프랑에 달하는 신규차관 제공을 승인,코파스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양각도호텔 공사에 대한 지급보증을 떠맡게 됐다. 플라의 도움으로 결국 CBC사가 지난 82년 이 공사를 따내게 된 것.
그 대가로 CBC는 플라에게 2천만프랑(약 30억원)의 커미션을 제공했는데 이를 은폐하기 위해 CBC는 플라의 개인소유 성을 완전히 개수해주는 대신 가짜영수증을 통해 다른 업체가 이 공사를 맡은 것처럼 위장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사를 맡고 있는 장 피에르판사는 ▲코파스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신규차관이 나가게된 경위 ▲이 과정에서 플라의 역할 ▲커미션의 출처와 이동경로 ▲가짜영수증 작성경위 ▲추가적인 관련자와 커미션 수수여부 등에 초점을 맞춰 조사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와 관련,그는 이미 CBC사장을 신문한데 이어 가짜영수증을 발행관련 기업과 플라의 개인유산 및 은행계좌,재무부 관계부서 등에 대한 수색을 실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사건을 보도한 르포엥지는 오는 3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미묘한 시점에서 이러한 스캔들성 비리가 밝혀진 점에 주목하면서 앞으로 수사진행에 따라 추가적인 관련자가 드러날 경우 양각도호텔 공사의 정치적 파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파리에 있는 한 관계자는 양각도호텔 공사는 북한당국의 기성고에 따른 대금지급약속 불이행으로 지난 87년 합작시공업체인 CBC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철수하는 바람에 골조공사만 끝난 상태에서 지금도 공사가 중단된채 남아있다고 전했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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