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천 원 짜리 핸드백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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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조금은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아기 기저귀를 치우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아이를 낳았다는 기쁨은 잠시였고 아기로 인해 생긴 지난 세 달 동안의 엄청난 생활변화를 감당 못할 때마다 절대적인 도움을 주신 어머니였다.
한 남자아이의「엄마」가 된 뒤 나의 감정변화는 극도로 혼란스러웠고 나약한 내 모습을 보며 한탄할 때도 많았다.
모처럼 오신 어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 못 보던 근사한 핸드백이 눈에 띄어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더니 빙그레 웃음으로 대담을 대신 하시기만 했다.
자꾸만 되물어도『얼마쯤 돼 보이냐』고 미소만 지으시던 어머니로부터 백화점 한정판매 때 산 1천 원 짜리라는 대답을 듣는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저렴한 가격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인상깊었던 것은『이렇게 싸고 좋은 물건이 어디 있니』하면서 지으시던 어머니의 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어머니는 얼마 전 친구 분들 모임에서도 핸드백자랑을 늘어놓았다고 하셨다.
빠듯한 집안 형편에 우리 일곱 남매를 대학까지 보내기 위해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저런 소박함을 체득하지 않으면 안됐으리라.
남대문시장에서 옷을 사 입어도 은은한 멋과 우아함이 풍겨 나오는 어머니의 모습이 어디서 연유하는지 궁금했는데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값싼 화장품을 써도 여전히 50대 중반의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얼굴과 고운 미소를 간직한 어머니의「미용관리비법」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1천 원 짜리 핸드백이지만 그 안에는 억만 금의 보석보다 더 귀중한 것이 들어 있으리라.
내가 방금 봉지에 싸서 휴지통에 버린 1회용 종이 기저귀를 어머니가 볼까 봐 얼굴이 그렇게 화끈거릴 수가 없었다.
김은주<서울 도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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