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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윤리 확립할 자체감독제도 필요|김병후<청년의사지 발행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경희대의료원사건 때문에 또 한차례 의료계는 홍역을 앓고 있다. 어떻게 에이즈와 간염보균여부, 그리고 유전성질환여부를 검사하지 않은 정액을 인공 수정케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해에 있었던 응급실진료거부사건 때 젊은 의사들은 회생시킬 수 있는 환자가 사망했던 사건 자체도 괴로웠지만 자신이 그 사건의 당사자였을 때 어땠을까 하는 사실에 더 괴로웠다.
응급실사건이나 미숙아 사망사건 등 이 대부분 젊은 의사들에 의해 발생했다. 대개월급을 받는 젊은 전공의들이었다.
임상경험이 적은 의사가 아직 의사로서의 윤리성을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이번 정자은행사건은 병원자체감사결과 밝혀졌다고 한다. 그리고 당사자인 의사는 그 대학 교수협의회를 맡고 있다고 한다. 과연 경희대의료원 내부에 이보다 큰 비리가 없었을까. 그리고 경희대의료원 이외의 다른 대학병원 정자은행은 제대로 운영되고 있을까.
의과대학생시절 선배인 산부인과 전공의로부터 정액을 제공하라는 강압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정자은행에 정액을 왜 제공해야 되는지조차 몰랐다. 현실적으로 사회지도층인사들에게 정액을 제공하라고 하면 기꺼이 에이즈검사에 응해 줄 사람이 있을까.
병원마다 개개의사들 진료행위의 정당성여부를 의사사회 내부에서 자체 감사하는 제도가 있었다면 국내 거의 모든 정자은행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이 같은 잘못은 없었을 것이다.
각 의사들의 진료행위가 어느 정도 우수한지에 의해 그 의사의 능력이 평가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첨단장비를 사용할 수 있느냐에 능력이 좌우되는데도 잘못은 있다. 영국보다 컴퓨터단층촬영기가 많고 어떤 장비는 전체유럽보다 우리나라가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의료보험이 적용 안 되는 과가 인기가 있고, 임상 각과에서 보험이 적용 안 되는 시술을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이 상황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을 긍정적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의사들 자체적으로 의료행위를 감시하고 평가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의사 개인의 윤리의식도 중요하지만 각 병원이 구체적으로 진료행위를 자체 평가하는 제도가 정착되지 않는 한 우리 의료계의 문제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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