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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열린마당

성균관 기숙사 ‘양현재’ 학생들에게 돌려주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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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울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 명륜당은 조선 500년 동안 지속해온 유일한 왕립대학교의 종합강의실이다. 명륜당 앞 동서편에는 현존하는 최고의 대학 기숙사인 양현재가 있다. 양현재는 퇴계·율곡·조광조 등 기라성 같은 조선시대 유생들의 학습·주거공간으로, 동재와 서재로 되어 있다. 성균관대는 1960년대부터 양현재를 유학동양학부 학생들의 기숙공간으로 이용해 왔다. 그런데 종로구청이 2005년 1월 느닷없이 문화재 관리 보호 차원에서 명륜당을 비롯한 문묘 내 10개 시설에 민간인 퇴거 명령을 내렸다. 수십 년 동안 학생들 기숙사로 사용되면서 건물이 심하게 훼손됐으며, 화재 등 사고에 대비한 안전시설도 없고 국가 소유 문화재를 민간인이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 학교 측은 “학생들이 조선시대 유생들의 모습을 재연하며 과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며 반발했다.

 하지만 2005년 6월 이후 학생들이 모두 떠난 양현재는 현재까지 텅 비어 있으며 대문은 굳게 닫혀 있다. 명륜당 쪽문을 이용해 앞마당을 가로질러 등교하던 학생들의 발길도 완전히 끊겼다. 성균관대 학생들은 이제 조선 중종 때 대사성(현재의 총장에 해당) 윤탁이 심었다는 명륜당 앞뜰의 노거수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역사의 향훈(香薰)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됐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숙사는 인적이 끊겨 구시대 유물로 쇠락을 거듭하고 있다. 얼마 전에 보니 기숙사 한쪽을 수리하고 있었다. 아무리 튼튼한 한옥일지라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석 달만 지나도 건물이 눈에 띄게 표가 난다고 한다. 각종 벌레가 기승하고 지붕이 무너지는 등 문화재 훼손이 불 보듯 뻔할 일이다.

 문화재 관리당국이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시설물을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동량들이 유서깊은 명륜당을 바라보며 역사의 향훈을 온 몸으로 느끼고, 그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선현들의 지혜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진정으로 문화재를 살리는 길이 아닐까. 화재 등 안전장치를 보완해 명륜당 문은 활짝 열려야 한다. 양현재를 하루빨리 학생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최영록 성균관 한림원 학정계제 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