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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비단섬에 경제 특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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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한 중국 단둥(丹東). 지난달 말 이곳에서 나흘간 열린 ‘북·중 상품 전시회’는 북한과 중국의 경제적 차이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현장이었다. 29년간 개혁·개방을 숨차게 진행해 온 중국, 과감한 개방을 망설이는 북한의 밑천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단둥의 압록강 변에서 확인한 북한과 중국의 격차는 개혁과 개방에 투자한 시간 차이만큼이나 현격했다. 신의주 쪽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것이 가로수였다. 반면 단둥 쪽에선 강변 아파트들이 북한 땅을 콧대 높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북·중 상품 전시회’는 단둥 시내의 압록강 호텔에서 열렸다.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과 공산품 판매 시장 진출을 통해 북한을 중국 동북의 제4성(省)으로 흡수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 온 중국 측이 북한 기업인들과 만나 투자 상담과 상품 전시·판매를 하는 자리였다.

 전시장 내부는 활기가 넘쳤다. 22개 북한 기업이 내놓은 제품은 신발·의류에서 보석 가공품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평양의과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해 부박사(한국의 석사와 박사의 중간 단계) 학위까지 받았다는 북한 여성이 말린 고사리(30위안)와 북한산 ‘비아그라’(40위안)를 동시에 파는 광경은 낯설고 어색했다.

 반면 톈진(天津)·탕산(唐山)·다롄(大連)뿐 아니라 멀리 남방 하이난(海南)에서 참여한 중국 업체들의 공산품은 북한산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은 장비와 생산설비 등을 북한에 수출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북한과 중국의 교역이 늘어나면서 북한의 무역 적자는 심각한 수준으로 불어나고 있다. 실제로 북·중 교역은 지난해 16억9960만 달러를 기록했고, 북한의 무역 적자는 7억6417만 달러에 달했다.

 북한으로 건너가는 중국 물품의 80%가량이 통과하는 단둥 세관과 압록강의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를 한나절만 지켜봐도 이런 무역 불균형은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양측 제품은 하루에 각각 두 번씩 상대방 국경을 넘는다. 현지 무역업자들은 “중국으로 넘어오는 화물차보다 북한으로 건너가는 화물차들이 짐을 더 많이 싣고 다닌다”고 말했다. 이대로 계속 놔두면 중국이 고의로 북한을 삼키려 들지 않더라도 북한이 중국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북한엔 어떤 돌파구가 있을까. 중국보다 낮은 인건비를 활용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드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 체제를 감안하면 특구 같은 제한적 개방을 통해 외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현실적 선택이다.

 북한은 2002년 ‘신의주 특구’ 카드를 뽑아들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유산됐다. 5년 만인 올 초 압록강 하구의 북한 땅 비단섬에 특구를 건설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바로 그 비단섬 앞을 찾아가봤다. 중국이 다루다오(大陸島)라고 부르는 이곳은 서해로 들어가는 압록강 하구 끄트머리에 있다.

 그런데 비단섬은 실제론 섬이 아니었다. 퇴적 작용으로 그 서쪽이 중국 단둥에 바짝 붙어 있기 때문이다. 비단섬 바로 앞, 중국 땅 단둥에선 공단을 만들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대규모 터 파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러나 바로 옆 비단섬에서는 남루한 차림의 북한 농민들이 맨손으로 김을 매고 있었다. 비단섬 앞까지 안내한 중국인은 “이런 곳에 특구를 만들면 북한과 중국이 함께 발전할 수 있을 텐데 북한은 지도자를 우상처럼 모시던, 중국의 문화대혁명 같은 시대에 아직도 멈춰 서 있는 느낌”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비단섬이 중국 땅에 완전히 붙어 버리지 않도록 하려면 퇴적된 토사를 적기에 준설해야 한다. 같은 이치로 북한 경제가 중국에 편입되지 않도록 하려면 ‘비단섬 특구’ 같은 과감한 조치를 미루면 안 된다. 주린 배를 채우기에 급급한 북한이 비단섬에 경제 특구를 조성할 용단을 언제쯤 내릴 수 있을까.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