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공이나 명분이냐”/후세인 휴전선언과 미 선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그냥 놔두자니 또 불씨될 것 뻔해/국제여론 나빠 추가응징도 곤란/“유엔결의 준수”받아내고 당분간 관망할듯
이라크사태가 새국면에 접어들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미국의 빌 클린턴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일방적인 휴전을 선언했다.
이에 앞서 후세인대통령 대변인은 클린턴 새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발표,『이라크는 미국의 적이 아니며 단지 제국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국가에 적일뿐』이라며 더이상 이라크에 대한 폭격을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반면 미국은 키티호크에 이어 이 지역에 두번째 항공모함인 존 F 케네디호를 보내 이미 지중해 동부의 이라크 폭격권에 배치가 끝난 것으로 밝혀졌다.
클린턴 새행정부의 조지 스테파노풀로스대변인은 『후세인이 유엔의 휴전조항 전부를 준수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한 미국의 정책변경은 기대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국방부 관계자도 이라크가 행동으로 휴전을 준수하지 않는한 이라크의 선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의 이같은 대응은 후세인의 선언이 정치적인 술수에 기초하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미국은 이번 후세인의 제안이 「속이고 빠지는 작전」의 전형적인 형태로 일단은 경계하고 있다.
후세인이 클린턴대통령의 취임을 계기로 새로운 유화정책으로 나오리라는 것은 이미 예건됐던 일이다.
이번 이라크 사태의 원인은 후세인이 마지막으로 떠나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을 향한 의식적인 도전에서 비롯된 측면이 없지 않다.
즉 후세인이 부시대통령에게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원한을 풀어보겠다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시가 이제 대통령에서 물러나고 새대통령이 취임하는 마당에 이라크는 미국과 새로운 관계를 정립할 시기가 왔다는 제안을 하고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라크의 이러한 새로운 접근을 미국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다.
미국의 선택은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이라크가 유엔의 정전조건에 모두 응한다는 가정하에 후세인 치하의 이라크와 새로운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이는 이미 클린턴이 뉴욕타임스지와의 회견에서 밝혔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다.
즉 미국이 다른나라의 지도자를 입맛에 따라 선택할 수는 없으니 비록 후세인이 미국이 상대할 수 있는 적임자는 아니지만 차선으로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새로운 관계를 갖는 것이다.
다른 한 선택은 클린턴정부가 부시행정부와 같이 후세인이 존재하는한 결코 새로운 관계를 갖지 않으며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 등 후세인에게 압력을 가하는 방법이다.
미국은 걸프전이 끝난후 2년간 이러한 제재를 가했으나 후세인은 건재했으며 이번에 다시 미국에 의식적인 도전을 해왔다.
따라서 후세인의 제거가 목적일 경우 지금까지와 같은 경제제재로는 효력을 낼 수 없다는 것을 미국 스스로가 잘알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좀더 압력을 높이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이다.
콜린 파월 미 합참의장은 17일 클린턴 새대통령이 워싱턴에 도착하던날 클린턴에게 새행정부의 대이라크 군사작전에 대한 브리핑을 하면서 좀더 대규모 공습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즉 후세인을 퇴진시키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제한적 공습으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으며,그에게 결정적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는 이라크의 정예부대에 대한 폭격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 내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후세인을 축출해 주기를 바랐으나 이라크 군부가 움직이지 않았던만큼 이라크 정예부대에 대한 폭격을 가함으로써 군부의 반발을 부추기자는 뜻이 있는 것이다.
제2의 항공모함이 공격권으로 진입한 것도 새로운 공습을 예견한 배치라 해석되고 있다.
이 두가지 선택중에 어느쪽을 택할 것이냐는 클린턴의 결심에 달렸다.
그러나 국제여론으로 볼때 미국이 공습을 확대하기는 매우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다.
더욱이 이라크 스스로가 휴전을 선언하고 더 이상 도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후세인의 제거를 위해 공습을 확대할 명분이 없는 것이다.
결국 클린턴행정부는 이라크가 유엔의 결의를 준수한다는 명분을 받아내고 후세인과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쪽으로 나갈 수 밖에 없어보인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