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해남에서 태어난 시당의 삶은 전통 한학의 명맥이 쇠퇴하는 시기와 겹쳐진다. 일제시대에 성장기를 보내며 시당은 일본의 신식 교육을 배우지 않고 사서삼경 등 전통 한학에만 전념했다. 문집 간행에 편집고문으로 참여한 홍형덕(79) 시당장학회 상무이사는 “‘시당체’라는 말이 생길 정도의 명필이자 한학자인 시당은 호남지역 유림들에게 선구적 역할을 했다”며 “‘충효일본(忠孝一本)’이란 말을 통해 인성 교육의 근본이 충효임을 늘 강조했다”고 회고했다.
시당의 첫 한시 전시회가 1980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으며, 첫 전시회의 수익금으로 81년 시당장학금을 만들었다. 홍형덕씨는 “해남 지역의 중고교 학생 500여명이 지금까지 1억2000여만원의 장학금 혜택을 받았다”면서 “비매품으로 만든 『시당집』을 전국의 대학과 도서관에 기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