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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자율 말하던 김신일 교수, 지금은 정반대로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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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중앙SUNDAY는 교육 수장을 지낸 9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했다. 내신 파동을 계기로 대학 자율화와 입시개혁 논쟁이 촉발된 상태에서 한국 교육의 갈 길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사실 역대 교육 수장 가운데 후한 평가를 받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이들이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잘 알고 그 해법을 고민했다는 점에서 교육현장에 던지는 메시지는 적지 않다. 인터뷰 내용을 분석한 결과 9명 중 6명은 정부가 획일적으로 내신 반영을 강요하는 것은 대학 자율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는 견해를 보였다.

김숙희 전 교육부장관(70)은 역대 교육수장 50명 중 24대 김옥길 장관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의 전공은 ‘식품영양학’이다. 교육에 문외한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취임식 때 “교육의 근본은 모성애다. 짐승도 어미는 제 새끼를 끝까지 돌본다”며 당당히 포부를 밝혔다.

그가 장관으로 있을 때 가장 도움을 많이 준 사람 중 한명이 서울대 사범대 교수이던 현재의 김신일 부총리였다고 한다.

지난달 19일 이사장으로 있는 서울 마포구 한국식품영양재단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김 전 장관은 “김신일 부총리가 사범대 교수할 때 나한테 와서 ‘교육은 자율로 맡겨야 한다, 자율로 크는 것이다’,그렇게 말하곤 했다”며 “자율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제도가 있거나 하면 그이(김신일)가 그게 아니라고 충고를 했었다”고 강조했다. 김 전장관은 “그래서 내가 장관할 때 부르짖은 것도 자율이었다”며 “그런데 지금 (김 부총리가)하는 것은 자율의 정반대로 나가고 있지 않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이어 김 전 장관은 “교육과는 전혀 이해관계가 없었기에 대통령에게도 (배포 있게) 교육현안을 갖고 대들 수 있었다”고 자부하며 “교육에 있어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근황을 들려주시죠.

“지금은 큰 오라버니인 고대 명예교수 김용준 교수와 살아요. 아직까지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어요. 둘째 오라버니(김용균 광제병원 원장)가 호서대에 있어 요즘은 강의도 호서대로 나가요. 둘째 오라버니가 아버지 병원을 가졌고, 세째 오라버니(김용환)는 순천향대 피부과하고 있어요. 막내(도올 김용옥)는 프리하게 지내고. 내가 큰 누나로서 어머니 대신 불만과 고민을 잘 들어주고 있지요.”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교육을 문제라고 하는데, 사실 문제가 쓸데없는 사람들이 교육에 대해서 간섭하기 때문이예요. 쓸데없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가요. 내버려두면 가게 돼 있는 것을 쓸데없이 정치가 개입해. 교육개혁을 할 당시, 교육을 정치적으로 하는 사람이 교육부장관이 되면 안된다고 했어요. 사람들이 나보고 그렇게 비정치적인 사람이 어떻게 (그 자리에) 갔느냐고 물어요. 나도 교육부 장관 될 때까지 김영삼씨가 어떻게 왜 나를 데려갔는지 몰랐어요. 나중에 들어가서 왜 나를 장관을 시켰냐고 물어봤지. 그랬더니 누군가 ”여성을 내각에 몇 명을 넣어야 한다고 했더라고요.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이 ‘이화여대를 가봤냐. 정문에서 여대 애들 붙잡고 누가 좋을지 물어봐라’ 했다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 입에서 많이 이름이 거론되는 이름이 나였대요. 내가 그 때 교양과목을 많이 가르쳤거든. 이름이 많이 나와서 그랬대요. 그래서 내가 김영삼씨에게 웃으며 ‘거 괜찮은 방법이었네요’ 했죠.

두 번째 문제가 학부모예요. 보통 난리치면 내가 말도 안해. 내 자식이라고 야단하는 게 (교육에서) 뚝 떨어져 나가야 해요. 선생이 학교에서 애 잡아먹지 않아요. 엄마, 아버지의 입장에서 개가 해야 할, 신세를 끼치지 말라는 범위에서 가르쳐야 되잖아? 나머지는 손 떼야 해요. 그냥 '저 학원이 좋네, 외국에 가면 어떻네' 이런 것만 관심 있는 학부모들이 각성해야 해요.“

"사고력 가로막는 참고서 없애려다 외려 사장들에게 당해 경질"

-교육부 장관시절 역점을 두신 부분이 무엇인가요.

”내가 교육부 장관 되면서 부르짖은 게 자율이예요. 오토노미(autonomy)말이예요. 가르치는 선생도 자율을 가지고 가르쳐야지, 우리는 교과서 그 지식만 가르쳐라고 하니 참. 나는 그래서 자율을 부르짖었어. ‘대학입시는 대학에 맡겨라’. 오늘날 내신 문제가 터져서 그런 게 아니야. 그 이전부터 그랬어요.

내가 대학 입학시험을 자율로 맡기려고 한 이유가 뭔지 아세요?, 아이들이 비참해서예요. 이화여대 교수로 있다 보니까 입학시험 보는 날 관찰해보면 수험생들이 일년을 주리를 틀면서 공부하다 막상 이화여대 시험 당일날 생리가 걸려 죽을 쓰는 애들이 3분의 1이더라고요. 일년을 주리를 틀다가 하루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이게 정상인거예요?. 그래서 ‘가’군, ‘나’군을 가른게 나요. 선택의 기회를 주자는 거지. 그래서 내가 (장관직에) 들어가자마자 서울대ㆍ연대ㆍ고대 총장을 불러놓고 ‘세 학교가 세 군데로 갈라지쇼’ 했어요. 가ㆍ나군으로 가르겠다고 했더니 고대 총장이 ‘서울대 치려고 준비했던 애들이 고대도 오는데 고대는 따로 가면 고대가 열등해진다’고 반대하더래요. 연대는 잘 따라줬지. 그래서 가(연대) ,나(서울대ㆍ고대)로 겨우 갈랐어요.

초등학교 개혁도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예요. 나무가 자라라면 잔뿌리가 커야 하잖아요. 일등도 없고 꼴등도 없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어요. 어떤 애는 글짓기 일등, 어떤 애는 수학에서 일등 이렇게 분야마다 일등을 주는 거죠. 내가 우연히 봉은초등학교 시찰을 갔는데 그 교장 선생님이 참 잘하는 게 졸업식날 다 애들에게 상을 주더라고요. 국어는 꼴지지만 수학엔 천재가 있을 수 있는 거 아뇨. 아이들의 진로 교육, 민주 시민 됨됨이 교육 이런 교육 목표만 놔두고, 나머지는 자율로 해야 하지 않겠소. 분야별로 이렇게 나눠서 1등을 주게 되면 자기가 뭘 잘하는지 어려서부터 알수 있어 진로결정에도 편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지. 그래서 내가 그 학교를 동영상으로 찍어다 다른 학교에 보급도 하고 그랬는데. 그게 과목마다 일등을 만들어줘라는 거예요. 전과목을 방정하고 품행이 단정하다는 것이 우수생은 아니잖아요. 과목별로 등수를 매기라고 했어요. 근데 그거는 안 따라하더니, (참여정부) 지금 와서 마치 새로운 정책인 것처럼 이 얘기가 또 나오고 하데. 나 참...

또 하나가 참고서를 없애려고 무진장 노력했어요. 출판사도 참 많이 갔죠. 내가 교육부장관에서 잘린게, 아니 당했다면 당한 게 바로 출판사 사장님들에게예요. 그들을 모셔두고 뭐 좀 해보려다 당한 거지. 참고서가 얼마나 유치하냐면, 답만 들어 있더라고요. 풀이과정은 하나도 없고 이렇게 얇은 게 들여다보면 ‘가는 나’, ‘나는 다’, 이런 식으로 풀이 과정이나 사고의 깊이를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정답만을 맨들어 팔더라고. 그거 갖고 돈벌어 먹는게 얼마나 못된 거예요. 그걸 때려 부시려고 그런 출판사 13분을 장관실에 불러다 ‘이건 제발 없애자’ 했어요. 그랬는데 나중에 내가 국방대학원에서 한 용병발언이 언론에서 호되게 당했지. (※김숙희 장관은 95년 국방대학원에서 장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에서 ‘베트남 참전에 동원된 군인들은 ‘용병’‘이라고 말해, 베트남 참전 단체들의 극심한 반발을 사 결국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나중에 그런 식으로 몰아간게 출판사들이라고 소비자 단체가 일러주더라고요. 내가 YWCA하면서 소비자 단체랑 좀 친했거든요. 내가 용병 얘기한 의도는, 용병에 대한 애처로움을 가지고 말한 건데 나를 그렇게 빨갱이라고 몰아가더라고요.”

-대학 교육도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하셨나요?

”그래요. 지금 김신일씨처럼 망신스럽게 하는 게 아니예요. 나 장관하고 그 양반 사범대 교수할 때 나한테 와서 참 많이 도와줬는데 말야. ’교육은 자율로 맡겨야 한다, 자율로 크는 것이다‘ 맨날 그렇게 말하곤 했는데. 그런데 지금은 자율의 반대로 나가고 있지 않아요. 대학교가 어련히 알아서 자기의 데이터를 갖고 (입학사정을) 할 텐데, 자기가 가르칠 학생을 뽑는다는데, 대통령과 장관이 그것까지 개입해야 하는지..원.

서울대가 이미 4월에 발표된 전형안을 가지고 말이예요. ’뭐든지 자율을 줘야 한다‘. 자율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제도가 있거나 하면 김신일 씨가 ’그게 아니다‘라고 충고를 많이 했어요. 내가 처음에 들어가서 교육을 잘 몰랐잖아요. 그래서 언론에서 인터뷰를 하러 온다 그러면 김신일 교수를 대담 파트너로 해서 나가기를 좋아했어요. 그 사람이 순리대로 얘기를 잘 하니까. 파트너로 교육정책에 대해 얘기해주시는 것이 참 고마워서 그 때 친하게 사귀어 뒀다. 근데 지금 왜 그래?“

"김신일 씨 자율에 어긋나는 제도 있으면 '그게 아니다'라고 충고하곤 했는데"

"평준화 풀려고 애써도, 정작 사립학교 교주ㆍ교사들이 반대해"

-3불에 대해서 여쭤보겠습니다. 고교등급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학교는 왜 가냐고요. 1등부터 8등, 이렇게 등수 맞으러 가는 거잖아요. 그렇지 않으려면 집에서 독학을 하면 되지 학교를 왜가요? 학교를 가야 등수가 나오죠. 내가 몇 등 되나 알려고 학교 가는 것 아닌가. ’너는 이정도 이렇게 탁월하니까 여기서는 일등이다‘ 이런 거 알려고 가는 건데 그것을 똑같이 하라고 하는 것이 말이야? 자유스럽게 해야지.

선택권도 없고, 바로 옆집이 학교인데 (그 학교에 갈) 자유도 없잖아요. 그것을 없애려고, 내가 평준화를 풀려고 끔찍이 애를 썼어요. 근데 사립학교 교주들에게는 평준화가 너무 편해요. (학교 경영을) 잘 못해도 학생들이 다 오거든. 정부에서 돈 주니까. 학교마다 아마 1년에 10억 정도 갈 걸? 그러니까 편하지. 원래 학교는 노력을 하고 아이들 패서라도 가르쳐야 하는데, 교주들이 절대로 찬성 안해요. 교주들 표가 얼마예요. 중ㆍ고등학교 우리나라에 1000개가 넘잖아. 그래서 그거 풀 사람 없어요.

내가 생각하기엔 사립학교는 자립형으로 하고 학교 선택권을 줘야 하는데, 그래야 학생을 데려오려고 해도 (실력이 없는 데는) 못 데려오잖아요. 교주뿐 아니라 교사들도 지금 편해요. 교사는 악을 지르고 가르쳐야 되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되니...그래서 (평준화를)뜯어 놔야 되요.

그런데 문제는 단계적으로 가야 하는데,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게 학교 선택권을 줘 놓고 학생이 많이 가려고 하는 학교는 학생수에 비례해서 보조금을 주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학생들이 정 싫어서 안 가는 학교는 문 닫아야지. 안 그러려면 열심히 노력을 해야지. 교장이 나서서 노력을 해야 해요. 내가 있을 때 어떤 학교 교장이 새로 오셨는데 교장이 불 같아서 대학입학성적을 강조하며 1년 선생들을 달고 치니까 선생님이 '살겠네, 못살겠네' 하더니 2년 만에 서울대 12명이 붙었다고 해요. 서울대 낸 게 꼭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성과를 내더라는 거요. 교육은 교장과 교사의 열의에 달렸어요. 피교육자는 어떻게 할지 모르잖아. 그저 지도자가 끌어주는 만큼 가는 거요. 공정택 교육감이 2010년부터 학군 조정제를 한다는데,그건 좋은 거예요. 가고 싶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 까진 좋지만 거기서도 또 뺑뺑이 아냐. 입학시험을 치러야 돼요. 옛날에는 좋은 학교가 경기ㆍ서울ㆍ경복 밖에 안됐지만, 평준화 풀어주면 학교도 늘고 아이들은 실력은 실력대로 인정을 받은 것 아니예요.

요즘 잘하는 애들은 맨 숨으려고만 해요. 불이익을 주니까. '쟤가 있어서 내가 2등이다‘ 이러면서 애들이 왕따시키는 거라는 거예요. 입학시험을 부활해서 입시경쟁이 중고등학교로 내려오는 한이 있어도 지금 이래서는 안 돼요. 학교는 1~3등 만드는 곳이고 상급학교 입학시키는 곳이예요. 그리고 수준별 이동수업도 제대로 시켜야 돼요"

-본고사는요? 학력고사 끝나고 본고사 시행되던 때인 94년에서 95년에 장관을 해보셨으니 잘 아실텐데요. 그 때 시행해보니 어땠나요.

”각 대학이 알아서 뽑으라고 했어요. ’가ㆍ나군‘으로 했지. 93년부터 95년까지 했는데 꽤 괜찮았어요. 잘 자리잡았어요. 학부모와 애들에게 부담은 좀 갔을지 모르죠. 그러나 해보니 본고사가 좋았어요. 실력있는 몇 명을 기르면 그 덕택에 몇 만명이 먹고 사는 것 아니예요? 대한민국 4000만이 이건희씨처럼 될 수 있느냐고요. 인재들은 좋았죠. 근데 학부모들이 시샘을 그렇게 했어요.(※본고사를 치면 성적 변별이 잘 되니 잘하는 학생들에 대해 시샘을 했다는 뜻) 학부모들 제발 그런 데 간섭하지 말라고 해. 자기 아이만 잘되면 좋은 제도고 안되면 나쁜 제도야? 그건(본고사는) 내가 들어갈 때부터 준비를 해서 무리가 없도록 실시를 했어요. 지금처럼 갑자기 이렇게 바꿔놓지 않았지. (※내신 50%를 실질반영 하라는 교육부의 주장을 말함) 자고로 입시개혁은 3년 단위로 가야 해요. 3년 전에는 공지해야 되잖아요. 지금은 몇 달 앞두고 바꾼다고 하니 혼란이 있는 거예요.”

"수능은 수명 다해…, 본고사를 봐서 천재 가려내는 제도로 가야"

"대학 경쟁력 좋아진다는데, 부잣집 아이 하나 기여입학 시켜줄 아량이 없나"

-본고사 못 보게 하니깐 지금 대학에서는 논술 보는데 이건 어떤가요.
“논술이라는 것처럼 채점하기가 애매한 게 없어요. 알아서 본고사 출제를 하라 그래요. 출제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니까 약식으로 하는 게 논술인데 그래서 지금 전국이 다 책 읽는다고 난리인데, 책에 목숨 걸 필요가 있나요. 제대로 알고나 읽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맨 도서관에 몇 천 권씩, 거실에 몇 천권씩 책 있으면 수준 높아지는 건가 보죠. 미국 선생네 집에 가보면, 학교 연구실에 책 그렇게 많지 않아요. 책을 끌고 집으로 가는 데도 없고요. 집에 오면 정원 풀도 깎고 가족끼리 대화하고 그러는 거지. 지금같이 정보가 흐르는 사회에서 집에 서재를 해놔야될 필요가 뭐가 있어요. 논술 그렇게 봐도 세계적으로 이름난 철학자는 하나도 안 나오더라. 뭐 거짓말 잘하는 사람만 나오지”

-그때 수능도 처음으로 도입하셨잖아요?
“수능도 이제 문제가 많아. 고등학교 교재 양이라는 게, 지식의 양이 얼마 있을 거 아니요, 그런데 하도 많이 봐서 이제 수능 시험 문제가 더 나올 것도 없어. 변별력이 생길 게 없어. 수능은 그만 둬야 해요. 일등부터 꼴등까지 어떤 놈은 동점도 나오고...(수능 같은 방식으론) ’이 문제는 어떤 점에서 어떻게 맞는 거다’는 아이의 견해를 볼 수가 없어요. 수능은 단답이라 그래. 그래서 맨 애들 시험보고 나와서 ‘아, 나 다 찍었어’ 이러잖아. 그리고 등급은 왜 매겨. ‘너는 1등급짜리 인생’, 이렇게 붙여주는 게 좋은 거야? 그럼 애들이 평생 ‘난 옛날에 2등급짜리였어’ 한다는 딱지를 달고 살아가게 왜 그런 걸 붙여주냔 말이예요. 그래서 대학이 ‘1~4등급이 똑같이 친다’는 짓이 이해가 가요. 지금 하는 짓은 똑같은 빵 찍어내는 풀빵 기계 만들어 놓고선 한쪽 귀퉁이가 좀 찌그러지면 너는 2등급, 조금 타면 너는 3등급, 안타면 1등급 이러는 거 아니예요.

대신 면접 시험 같은 방식은 좋아요. 나도 학생 뽑아봤지만 성적은 나빠도 인상이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 있거든. 호감이 가서 대학이 뽑을 수도 있잖아요. 이렇게 하면, 대학입시에서 사람평가가 외줄로 되지 않잖아. 사람이라는 게, 참 다양한 게 많은 거요, 가려져 있는 게 많아.

노무현 대통령도 자기는 그렇게 (대학)안가고 대통령 됐으면서…. 어렸을 때 공부 못한 사람이 나중에 뭐가 될지 어떻게 알아? 1~2등급으로 딱지를 미리 매겨놓으라는 건데, 영어ㆍ국어ㆍ수학을 잘해서 1등급 인생 되는 거야? 치워버리라 그래. 김신일 그이 사범대 교수가 왜 그래…”

-기여입학제에 대해서는요.

“학교가 알아서 기여입학에 대해 결정하라고 해야 되요. 돈 가지고 자식에게 이득을 끼치겠다는데 그걸 왜 못하게 해? 과거엔 돈 많이 벌면 도둑놈 취급 받았지만 지금은 세계적으로 경쟁을 해서 버는 거라 그게 쉬운 게 아니예요. 돈 잘 버는 것도 실력이라 그래. 내가 실력 있어서 기여입학 시키면 몇 십만 명은 공짜로 공부시켜 줄 수 있는 거 아냐? 자기가 공부 못해서 손자놈은 이런 학교를 보내면 좋겠다 그러는 것을 봐줄 아량이 그렇게 없어요? 우리나라 2만불 되고 싶어 안달이면서 이런 데는 너무 각박해요. 기여입학제 한다고 하면 가야산 산중턱에 있는 Z라는 학교에 기여입학 하겠어요? 기여입학 하고 가겠다는 데가 서울대ㆍ고대ㆍ연대, 그리고 이화여대는 되려나? 결국 몇 군데 밖에 없어요. 왜 우리는 하버드 같은 대학이 없냐 하면 키워놓지를 못해요. 하버드는 기여입학제 하면서 집안내력도 보고, 명예도 보고 그런다.그런 집안 애들이 서울대 가서 저 귀퉁이에 좀 서 있으면 안되나요? 그 돈으로 돈 없어 공부 못하는 아이 공부할 수 있는데. 또 실험실 기기도 살수 있고. 왜 ‘글로벌하게 생각하고 로컬하게 행동하라’고 하지 않아요. 보는 것은 세계적인 안목으로 보더라도 지역사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해야지. 정원 외의 몇 %는 재량권을 가지고 뽑을 수 있어야 되도록 해야죠. 이명박이 위장전입한 걸 갖고 뭐라고 하는데, 이명박이 위장전입할 정도로 교육제도를 망하게 한 책임은 없는 거요. 돈 좀 벌어서 애들 좀 잘 키워보고 싶다는데 별 거지같은 법(※주민등록위반법을 말함)도 다 있어요. 나라를 팔아먹지만 않았으면 돈 벌어서 지 새끼 공부 더 잘해보겠다는 것이 뭐 나쁘냐고요. 누가 알아요. 그 아이가 좋은 인재 돼서 사회에 공헌할지.”

"공무원 퇴출제처럼 실력 미달된 선생님들은 퇴출시켜야"

"교사들 다 서양사 선생도 아닌데 방학 때 왠 외국여행을 그리 많이가?"

-특목고는 어떻게 돼야 하나요. 확대가 옳습니까.

”지금처럼 하려면 없애는 게 나아요. 지금 중고등학교도 한 교사가 8~9과목을 다 가르치잖아요. 선생님들이 과목별로 가르치게 해야, 잘 가르칠 수 있어요. 우리나라가 외국처럼 고학년 교사들이 대학교수 자격증이 있나요. 왜 그런 것을 못하나 몰라요. 그러지도 못하면서 지금 특목고는 불이익만 잔뜩 받잖아요. 특목고 애들 등급제 하면 3~5등급까지 다 나와요. 그럼 내신이 얼마나 손해야. 이렇게 하려면 운영을 하려면 따로 해야지. 안 그러려면 특목고 없애야지. 지방의 애들 1등급이 과학고 가면 10등급이 될 지 알게 뭐냐고요. 그런데 특목고 없애면 평준화 되는거지. 그럼 나라는 결국 하향 평준화되지. 그나마 길 뚫고 개네를 그렇게 끌어내려고 해 인재가 되는 것인데…쯧쯧.

그리고 아이들도 다 대학갈 필요가 없어요. 나 교육부 장관때 전문대를 진짜 전문대학 만들려고 했어요. 내가 식품영양 전공인데 우리나라는 빵만 구워요. 우리나라에 빵 연구소는 그렇게 많으면서 밥 연구소가 하나도 없단 말요. 햇반 나와서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지 하나도 모르지 않아요. 고기전문가ㆍ김치전문가ㆍ저장식품 전문가 등 이런 전문가를 만들어야 한다 했죠. 우리는 흥미로워서 쳐다보고 싶은 제대로 된 전문대학이 없다. 그러니 서울대 나와서도 안경학과를 또 가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냐는 말이예요.”

-교육개혁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현재로서는 중ㆍ고등학교 선생님 질을 소양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일 시급해요. 선생님이 소양을 발휘하면 상금이 나가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해요. 지금은 열심히 할 필요가 없죠. 능력있는 이도 흔들흔들 거리는데요. 가만 있어도 학생 주고 돈 주는 데 미쳤다고 열심히 해요. 서울대학의 교수와 지방 교수가 평가가 똑같냐고요. 서울대는 대학원생이(잘하니까 학생들이) 꽤 오죠. 그러니까 시골대학 교수들은 안 붙어있는 거 아녜요. .(학생들이 잘 안 오니까) 서울로 기어올라오죠. 중ㆍ고등학교 평가를 해야 잘하는 선생님들이 신나요. (※교원평가 해야 한다는 취지). 전교조가 나빠요. 평가 없는 조직이 없잖아요. 평가해서 좋게 해야 하는데 평가는 커녕 조언도 못하게 해요. 중ㆍ고등학교는 교사 때문에 망해요. 선생님이 해이해도 연금 받고 다 하니까 하려고 안해요. 평가제도의 필요성을 제대로 말하고 추진시킬 수 있어야 해요. 원래 교사들은 여름방학에는 여기저기 모자라는 부분 보충하는 연수도 가고 그런 제도도 많이 생겨야 하는데 지금은 방학 때 교사들이 외국여행가는 사람 왜 그렇게 많을까. 그들이 다 서양사 선생도 아닌데, 아주 다 인류학자들이야.

그들한테 물어봐요. 학원선생만큼 노력했냐고. 공무원 퇴출제처럼 교육부 장관이 점수 미달된 교사들은 퇴출시켜야 해요. 잘 못 가르치면 고등학교를 중학교로 내리고, 격하를 시켜주면 좋겠어요. 교원정년을 똑같이 62세로 하는 것은 나쁘다. 65세까지 해도 펄펄한 교사가 있고, 젊어도 100살처럼 코 할아버지로 보이는 교사도 있어요.”

"설익은 정책 관료들이 미리 신문기자에게 일러 골탕 먹은 적 많아"

"나같이 정치적으로 이해관계 없는 사람이 (대통령에게) 대들 수 있어"

-교육관료들이 장관 처음 들어오면 관료들이 정신없게 막 ‘뺑뺑이’를 돌린다고들 하던데, 진짜 그런 일이 있나요?

“있죠. 골탕을 먹이는 방법이 여러 가지예요. 앉아서 정책을 만들면 저 장관이 발표하기 전에 그 정책을 신문기자에게 일러요. 손을 더 봐야 하는데 덜 된 것을 터트리면 기자들이 야단을 하고 그러면 청와대에서 난리가 나요. 완제품을 만들기 전에 그 이전에 졸속하게 말해버리는 거죠. 그럼 장관은 앉아서 당하는 거예요.

그들이 담합하는 데 당한 게 많아. 장관이라는 게 내가 원하진 않았지만 주어진 기회니까 내깐에는 하나라도 잘해놓고 나가려고 했는데. 기자가 하도 달라붙어서 골치가 아팠어요. 그래서 내가 5시에 기자들 눈 피해서 퇴근하는 척하고 연세대 송자 총장에게 방 하나만 마련해 달라고 했어요. 연대 알랭관이라는 데서 방하나 마련해 교육부 몇 사무관ㆍ브레인들하고 같이 밤새고 토론했지. 서기관 데리고 나가서 밤 새도록 정책을 만들어보려고 디스커션도 하고 다녔어요. 그런데 실국장들에게 ‘어제 저녁에 마련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면 이 사람들이 기자한테 일러. 그래서 추진이 안된 게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몇 사람 말 안나갈 사람과 김신일 씨 등만 불러서 그들이 ‘좋네요’하면 그제서야 언론에 브리핑하고 그랬지...

내가 교육을 잘 몰라서 더 열심히 했어요. 요즘 장관들은 맨 출장다니지만 출장가면서 일 어떻게 해? 나는 외국가는 것도 안 갔어.

실질적으로 고개를 파묻고 일을 해야 해요. 해외여행 다닐 새가 없어요. 쳐들어 앉아 일을 해야 해요. 교육이란 건 생각할 게 많아요. 학교문제를 생각하면 끝도 없어. 나는 여자의 눈으로 봐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다 고쳤어요. 500개 넘는 학교가 연탄 불을 피우는 게 위험해 보여서 다 뜯어고쳤지. 안전한 전기난로로 싹 다 바꿨다니까. 여자의 눈에 띄는 것도 남자 못지않게 많아요. 신발주머니 들고 다니는 것도 없앴어. 애들이 책가방, 미술책, 신발주머니까지 들려면 손이 없어. 혹시 넘어져도 그렇고. 그래서 신장을 학교에 만들었어요. 사물함 넣어준 것도 다 내가 했어. 자주 현장을 나가서 봤으니까 할 수 있었지.
장관할 때 지금 차관된 서남수 전 서울시 교육감도 도와주고, 서울대 이태수 교수, 대학정책국장으로 불러들여서 머리 들이대고 앉았어요. 이명현 교수도 교육개혁위원회 1기 상임위원으로 나한테 도움을 줬어요. 그런데 청와대는 (내가)선을 확실하게 그었어요. 김정남 교육문화수석은 운동권 출신이었는데,나를 색안경 끼고 봤어요.‘저 사람이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냐’ 그러고 쳐다보는 것 같았어요.”

-청와대 참모들이 간섭을 많이 했나요?

“참견을 비교적 많이 했어요. (정책안을)가져가면 이것 짜르고 저거 짜르고 해서 속으로 아니꼬왔어요. 전문가를 통해서 자지도 못하고 밤새서 정책안을 만들어 갔는데 자기는 눈 껌뻑이다 (정책안을) 자르는 거야. 그러면 맥빠지죠.”

-교육개혁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장관들의 열의가 없는 것이 개혁의 걸림돌이죠.열의를 가지고 대통령에게 장관 자신이 ‘빌드 업’(당당히 맞설 수 있다는 뜻) 돼야 해요.그러려면 자기자신이 확신이 서야 해요.
장관이 되면 하도 주변에서 같지도 않은 소리를 가지고 난리를 치는데,내가 왜 이래야 하냐. 장관 해봐야 많이 할 것도 아닌데 적당히 하다 가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요. 그냥 좀 놔두면 다 하는데.난 김영삼씨가 1년만 더 놔뒀으면 했어요. 정치 장관 되면 개혁 못해요. 나는 빨갱이란 소리를 하도 들어 지겨워요.내가 어디가 빨갱이야. 용병발언으로 장관에서 물러난 뒤 이화여대 복직을 하겠다고 했을 때 이화여대 교수들도 나를 복직하지 못하게 했다고 해요.용병이라고 했다고.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여보, 당신하고 나하고 30년 이상 서로 알고 지내지 않소, 그런데 김숙희가 빨갱이인 것을 이제야 발견했소?’ 했어. 그랬더니 그들 아무 말도 못하더라”

-앞으로의 교육이 어떻게 가야합니까.
“열심을 가진 분이 장관으로 와서 교육이 서야 해요. 정치적으로 임명하면 안되요. 교육부가 정치와 결탁이 되면 안됩니다. 나같이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해요. 내가 올드 미스밖에 더돼? 그래서 (권력에)대들 수 있었어요. 그렇게 대들 수 있는 사람이 자격자예요. 내가 이화여대에서 가르쳤던 사람이고, 형제들이 좋아 얻어들을 소리가 있는 덕분에 이리저리 균형감각을 갖출 수 있었던 걸로 봅니다.”

강민석·이원진 기자 ms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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