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의 연속… 침묵으로 “보신”/간부회의(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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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질문없도록 보고는 짧게/부처 합동회의 정책 조정보다 “면피용”/최근 「토론형」유도… 권위주의 개선조짐
명실상부한 문민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국민모두의 기대가 큰 것은 물론이지만 직접 몸을 담고 있는 공무원들의 기대 또한 각별하다.
사회전반적인 민주화 흐름에 따라 사회 각 부문에서 「권위주의 청산」을 위한 급속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나 권위주의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공무원 사회의 변화는 굼뜨기만 하기 때문이다.
각 부처에서 행해지는 소위 간부회의의 모습을 보면 공무원사회의 권위주의가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있는지 알 수 있다.
70년대 당시 악명이 높았던 김학렬부총리의 불호령을 듣고 얼이 빠진 모과장이 캐비닛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는 얘기는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으나 20년이 지난 오늘날도 『똑바로 하라』는 장관의 야단에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물러나오는 국장들의 모습은 그때와 크게 달라진게 없는 풍경이다. 서울시청의 간부회의와 구청장회의는 어전회의를 방불케하는 회의진행으로 유명하다.
개별적인 업무보고 도중 시장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하면 즉석에서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쑤여서 간부들이 될 수 있으면 보고하지 않으려 하고 부득이 할 때는 1∼2분안에 끝날 수 있는 간단한 것으로 준비하는 경향이 생겼다.
노동부의 경우 「히틀러」로 불린 최병렬 전 장관이 주재한 간부회의는 찬바람이 불 정도.
보고도중에 서류를 훑어보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얘기지』하며 보고마저 중단시키는 바람에 머쓱해진 간부들이 한둘이 아니고 회의가 주로 면박당하는 자리여서 늘 긴장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그나마 장관이 워낙 속전속결형이어서 회의 시간이 길어야 한시간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시간이 짧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삼았다는 후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환경처의 경우는 장관이 워낙 실무에 밝고 꼼꼼한 스타일이어서 회의가 대체로 길어지게 마련인데 회의도중 자리를 뜬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경직된 분위기다. 이번주초 올해 처음으로 열렸던 지방청장회의에서는 오전 9시30분에 시작된 회의가 오후 1시가 다 되어서야 끝나자 그때까지 급한 용무(?)를 참고있었던 지방청장·국장·과장들이 한꺼번에 화장실로 몰려 만원사례를 이루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회의도중에 화장실마저 가지 못하는 분위기는 다른 부처도 비슷한 사정으로 서울시청의 간부회의 도중 유일하게 화장실을 다녀오는 모간부는 「살벌한 회의 도중에 화장실을 가는 용감무쌍(?)한 사람」으로 부러움마저 얻고 있을 정도다. 각 부처의 회의가 보고­질문­답변­지시 등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돼 「회의」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라면 한달에 서너번씩 열리는 관계부처 합동회의라는 것도 의견수렴이나 효율적인 정책수립의 차원보다는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때를 대비한 형식적인 「면피용」이 많다는게 회의에 참석한 공무원들의 불평이다.
그러나 극히 최근에 들어서 장관 개인의 성향때문에 회의형태가 상당히 개선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보사부의 경우 현 장관이 부임하면서 종래의 「월례조회」를 「월례정책보고회의」로 바꿔 계장과 주사도 순번제로 참석시켜 각국의 업무보고에 대한 난상토론을 벌이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의료보험조합의 통합일원화 문제를 놓고 간부들간에 찬·반 의견이 대립돼 열띤 토론이 벌이기고 했다.
또 노동부는 현 장관이 얘기를 하기보다 많이 듣는 경청형이어서 회의시간에 현안에 대해서는 종종 토론을 유도하고 마지막에 교통정리식으로 마무리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손장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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