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지진 참사현장] 모성애는 지진보다 강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이란 밤시(市)를 한순간에 거대한 묘지로 만들어버린 지진도 아기를 지키려는 어머니의 모성애는 막지 못했다.

지진 발생 37시간 만인 27일 저녁 건물 더미에 깔려 죽은 어머니의 품 속에서 6개월 된 여자아기가 극적으로 구조됐다고 로이터 통신이 29일 보도했다. 밤 남부 주택가의 붕괴된 건물 속에서 발견된 나심이라는 이름의 이 아기는 구조 직후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 치료를 받았는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단체 직원들은 지진이 일어나며 집이 무너지던 순간 어머니가 아기를 품어 떨어지는 흙과 나무더미로부터 아기를 보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진이 밤시를 강타한 시간은 오전 5시30분쯤으로 주민 대부분이 잠들어 있던 때였다. 따라서 아기의 생존은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자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아기를 껴안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기의 어머니는 발견 하루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란 적신월사(이슬람권의 적십자)의 헤사모딘 파로키야르 공보관은 "어머니가 아기를 살렸다"며 "현재 아기는 건강한 상태에 있다"고 밝혔다. 구조 당국은 아기가 장시간 동안 음식과 물도 먹지 못한 채 밤의 추위를 견딘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란 국영TV는 "구조팀은 37시간 만에 아기를 구해 냈지만, 건물 잔해에서는 어머니는 물론 아기의 형제.자매들의 시신도 함께 발견되는 등 아기의 가족은 불행히도 모두 죽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적신월사의 한 구조대원은 아기가 72시간 만에 구조됐다고 말했지만, 이후 이란 국영TV와 구조대 간부들은 37시간 후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29일에도 무너진 가옥 속에서 사흘간 깔려 있던 12세 소녀가 다리가 부러진 채 구조됐다. 그러나 27일 구조에선 잔해 속에 묻혀 있던 어린 소년을 꺼내기 위해 사람들이 무더기로 몰려 들었다가 탈진해 있던 소년이 질식사하는 사고도 발생했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극적인 구조 소식에도 불구하고 지진 닷새째인 30일 구조작업은 시신 발굴과 생존자 구호작업으로 바뀌고 있다. 이란 데일리는 "이제 생존자 발견은 기적에 가깝다"고 보도했으며,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펴온 독일 대외원조개발부 기술원조반(THW)도 "생존자가 더는 없을 것으로 보여 30일 철수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란 라디오방송은 30일까지 밤시와 인근 지역에서 시신 2만8천구가 매장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밤이 위치한 케르만주의 한 고위 관리는 "현재 주변 마을에 대한 구조작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망자 수는 5만명을 넘을 수 있다"고 말하는 등 그 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채병건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