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전속결로 추가협상 끝낸 배경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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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속전속결이었다. 16일 미국이 추가 협상을 제안한 뒤 13일 남짓, 단 두 차례의 공식 협상으로 한.미 FTA 추가 협상은 마무리됐다. 여기에는 정치적 고민이 크게 작용했다. 추가 협상은 미 의회를 의식한 미 행정부의 요구로 시작됐다. 따라서 미국의 압박에 밀려 지나치게 서둘 경우 정부 체면이 구겨질 수 있다. 이른바 명분론이다. 그러나 협상을 미 행정부의 신속무역권한(TPA)이 소멸되는 6월 말 이후로 넘길 경우 미 의회가 간섭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자칫 현 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평가받는 한.미 FTA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었다. 미 의회에서 자동차.개성공단.쌀까지 재협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부담을 더했다.

결국 청와대가 직접 나섰다. 휴일인 24일 변양균 정책실장 주재로 긴급대책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미국이 제안해 온 신통상정책의 내용이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명분에 집착하기보다 실익을 챙기자"는 현실론이 우세해졌다. TPA가 소멸된 이후의 불투명한 미래에 모험을 걸기보다 조기 타결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다. 다음날 곧바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추가 협상 전략은 미국 측 제안을 수용하되 어떤 반대 급부를 받아낼 것인가에 맞춰졌다. 김 본부장은 비자 문제와 의약품에서 미국의 양보를 요구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미국이 난색을 표시하면서 협상은 한때 긴박한 국면을 맞았다. TPA 만료 시한을 감안하면 남은 시간은 불과 이틀. 그러나 최종 결론은 내지 못한 채 김 본부장은 28일 오전 5시 인천공항으로 돌아왔으며, 즉시 청와대로 직행했다. 청와대에선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긴급 관계 부처 장관회의에서 한국의 마지노선을 논의하고 있었다.

최종 협상은 대면 접촉이 아니라 국제전화를 통한 이례적인 방식으로 마무리됐다. 28일 밤 전화 접촉을 통해 한국이 노동.환경 분야의 미국 측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통보했다. 29일 새벽에는 전화를 통해 비자 문제와 의약품에서 양보하겠다는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수용 답신이 도착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공식 서명이 임박한 상황에서 추가 협상을 제안한 것에 대해 두 차례나 유감을 표시했다. 추가 협상은 전격 타결됐다. 김 본부장은 귀국 하루 만에 또다시 공식 서명을 위해 워싱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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