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국가대접은 국력 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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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나라에서 생긴 일인데… 10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네요."

29일 오전 캄보디아 여객기 추락사고 희생자들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프놈펜 병원에서 만난 교민 문치현(51)씨는 격세지감을 토로했다.

보코르산 사고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했던 문씨는 1997년 9월 베트남 항공기가 프놈펜 공항 외곽에 추락했을 때도 현장에 달려갔었다. 당시 한국인 21명을 포함해 탑승자 65명이 숨졌다. 추락 지점에서 공항까지의 거리는 10여km에 불과했다.

문씨는 "당시 캄보디아 당국의 대응은 실망스러웠다"고 회고했다. 구조팀은 중장비 지원을 받지 못해 비행기 잔해를 일일이 손으로 치웠고, 군대나 경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일부 주민이 시신을 뒤져 지갑과 시계를 훔쳐가도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악천후 속에도 사고기와 생존자를 찾기 위한 캄보디아 군경의 수색작전은 계속됐다. 훈센 총리는 현장으로 달려와 수색팀을 독려했다. 경호실 요원 300여 명이 수색에 투입됐고, 총리 전용 헬기까지 동원됐다. 이민생활 24년째인 문씨는 "오랜 내전과 빈곤에 허덕이는 이 나라 사정을 감안하면 최대한의 성의를 다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프놈펜 시내에서 만난 몬폰(28)도 "홍수로 수십 명이 죽어도 총리가 직접 나서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며 놀라워했다.

10년 사이에 캄보디아 정부의 태도가 이렇게 변한 이유는 뭘까. 캄보디아 경제에 미치는 한국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교민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해 한국 기업과 개인이 캄보디아에 투자한 금액은 약 10억 달러에 이른다. 캄보디아 투자 국가 중 가장 많은 규모다. 2003년 이후 한국 정부가 제공한 차관 6700만 달러는 이 나라 곳곳의 도로와 교량 같은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쓰였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2006년 기준)이 506달러에 불과한 캄보디아에는 큰 도움이다.

매년 늘고 있는 한국 관광객 역시 변변한 산업이 없는 캄보디아에는 소중한 외화 수입원이다. 김호식(56) 프놈펜 한인회장은 "한 나라 국민이 해외에 나가 받는 대접은 국력에 비례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강기헌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