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극복했다|권종형<연세대 전자공 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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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학낙방이란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재작년 안전지원을 했던 과에서 낙방을 했을 때 나는 그것을 내 실력 탓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 래」하며 한탄했다. 그러면서「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화를 억누르기 힘들었다. 정말 혼돈스러운 나날이었다.
스스로분노에 지쳐서「분노하는 일」자체를 포기하는 데까지는 보름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이 때까지는 누군가 좋은 말로 위로하는 것조차 내 분노를 지속시키는 기폭제가 되곤 했다.
부모님은 대학에 떨어진 것을 확인했던 날「다음에 잘해라」라는 말씀 한마디 외에 다른 말씀을 안 하셨다. 그리고 밖에서 늦게 오면 기다렸다 밥을 차려 주시고, 공부에 대해서는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으시는 등 고3때와 똑같이 대해 주셨다. 어머니가 부쩍 절에 자주 가시고 불공에 열심인 것으로 보아 어머니의 불안감을 눈치챌 수 있었을 뿐 다른 행동이나 말씀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친한 친구가 같이 낙방해 서로 의지하며 함께 공부하고.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었던 것도 큰 힘이 되었다. 또 전화만 하면 언제나 달려나와 내 넋두리를 다 들어주고 늘 기억해 주었던 대학생친구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다.
낙방·재수는 참 아픈 기억이다. 그러나 분노와 좌절을 스스로 극복하고 매일을 성실히 보내고 난 뒤 남는 뿌듯함, 그리고 성실한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얻게 되는 나 자신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은 나를 더욱 성숙시켜 주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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