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나라살림 이렇게 각계 인사들이 거는 기대|정서영<KIST 선임연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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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영삼 대통령당선자가 내세운「신한국」창조에는 탈냉전·과학기술 패권주의 시대에 대처할 국가운영의 이념이 담겨 있어야 한다.
경제기획원과 KIST(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는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각각 경제와 과학을 대표하는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개발시대」인 60년대에 세워진 두 기관의 현재를 비교하는 것으로 새 정부에 대한 과학계의 희망을 대신하고자 한다.
기획원은 61년 설립이후 7차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과 그 성공적 운영, 그리고 국부증대 및 효율적 이용 등 많은 경제적 업적을 쌓아 왔다.
이같은 성공은 우수하고 패기만만한 정예 경제엘리트집단의 무모하리만큼 소신 있는 정책수렵과 역대 모든 정권이 기획원에 대해 강력하고 일관성 있는 정치적 뒷받침을 해주었던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반면 66년 설립되어 70년대 중반까지 한국과학기술의 견인차로 각광 받았던 KIST의 현 위상은 설립 초기처럼 더 이상 자신만만한 이공계 정예 엘리트 집단의 요람이 아니다. 80년대 초반 신 군부의 혹독한 정치·경제논리가 불러일으킨 정부기관 통폐합의 회오리바람에 제일 먼저 내몰리는 기관으로 전락하기 시작하더니 6공화국의 행정개혁위원회 및 출연기관 평가 작업에서도 도마 위에 제일 먼저 올랐던 것이다. 이제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과학계의 「흘러간 왕년의 스타」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 과학 일선에서 느끼는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다면 경제엘리트와 달리 이공계 엘리트 집단들은 역대 대통령과 국민들의 과학기술 입국이라는 여망을 무시하고 그동안 무사 안일한 과학 놀음만 계속해 왔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현실을 자초한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정치와 경제논리에 의해 과학논리가 지배당해 온 5, 6공 아래에서 위정자, 특히 핵심 경제참모들이 이공계 엘리트 집단의 정치무능을 과학무능인양 오도하고 돌을 던지는 우를 범한 데서, 경제정책과 같이 강력하고도 종합적이며 지속적인 과학기술정책이 없었던 데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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