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입양 한인여성, 30년만에 LA서 생부 극적 상봉

중앙일보

입력

▶30년전 생후 4개월만에 덴마크로 입양된 카밀라 요겐슨씨가 26일 JJ그랜드호텔에서 생부와 감격적인 상봉을 하고 있다. 백종춘 기자


눈물은 없었다. 30년 세월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핏줄을 확인하는 순간 나란히 앉았던 부녀는 말없이 손을 뻗어 서로를 껴안았다.

생후 4개월만에 덴마크로 입양된 서른 살 딸에겐 태어나 처음 보는 '생부'였고 예순 여섯 아버지에겐 출생 조차 제대로 확인 못한 '잊혀진' 딸이었다.

"아버지라고 불러보고 싶었어요."

"내 얼굴이 있네. 그저 보기만 해도 내 딸이라고 알겠는데 뭘."

말이 통하지 않아 서먹한 분위기에서도 가슴은 무언가 느낀 모양이다. 부녀는 서로 껴안고는 환하게 웃었다.

26일 오전 JJ그랜드호텔에서 카밀라 요겐슨(한국명 김태경.30)씨와 김태(가명.66)씨는 마침내 만났다.

긴 이별이고 먼 거리였던 만큼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요겐슨씨가 친부모를 찾아나선 것은 지난 96년부터다. 그간 네차례나 한국을 방문해 몇몇 입양기관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태어난지 나흘만에 자신이 버려졌을 때 바구니안에 있던 친모가 남긴 쪽지와 자신의 출생 직후 사진 한장 뿐.

"한국에서는 그렇게 협조적이지 못했어요. 많이 어렵고 힘들었죠.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그러다 한국의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가 나섰고 LA의 사설탐정 한명수씨에게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한씨는 1년간 추적끝에 가든그로브에 사는 아버지 김씨를 찾아냈다.
한씨가 김씨를 찾을 수 있었던 데엔 요겐슨씨가 가진 쪽지 한장이 오히려 단서가 됐다.

양쪽이 기억하는 출생병원명이 같았고 어머니 이름과 입양 시기가 비슷했다.

마침내 찾았지만 또 다른 산이 있었다. 김씨가 딸을 모른체 해야 했던 자신의 입장과 현재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만나길 망설였던 것. 딸이 만나고 싶어한다며 설득하길 1년.

30년의 세월과 5600마일의 거리를 돌아 부녀는 손을 맞잡을 수 있었다.

“부모를 찾는 일은 전혀 로맨틱 하지 않았어요. 힘들게 만났지만 아버진 여전히 낯설어요. 하지만 내 스스로에겐 자랑스러워요. 내 할 일은 다 했으니까.”
요겐슨씨는 조심스럽게 감회를 털어놨다.
그런 그녀를 보며 아버지 김씨는 미안하다는 말 밖엔 다른 말을 쉬 꺼내지 못했다.

그녀는 이제 또 다른 반쪽 뿌리를 찾고 싶다고 한다. 어머니라는 이름의.

이번에도 쉽진 않을 듯 싶다. 알고 있는 것이라곤 1943년생 이혜자라는 이름과 75년까지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살았다는 사실 밖엔 모르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서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낳아 주신 분들을 찾지 못했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녀의 눈에선 원망의 눈물 대신 용서의 의지가 반짝였다.
▷제보:(323)633-3232 한명수/덴마크 연락처 0045-29903602 카밀라 요겐슨

정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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