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이웃돕기 5년 세밑 밝힌 어느 근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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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산·유원지 뒤져 매일 빈병 모아/해마다 2백여만원 만들어 성금
한 젊은 근로자가 행락객들이 버린 빈병을 모아 판 돈으로 5년째 소리없이 불우이웃을 도와온 사실이 알려져 세밑 화제가 되고있다. 부산시 모라동 신발 밑창 제조업체인 서경산업 근로자 박영득씨(31·부산시 주례2동 55의 78)가 바로 그 주인공.
박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이면 금정산을 비롯,행락객들이 많이 몰리는 유원지를 찾고 퇴긴 후엔 주례동 일대를 헤매고 휴일·휴가 때는 아예 산에서 하루를 보내며 행락객들이 버린 소주·맥주병 등 빈병을 모아왔다.
88년부터 5년간 빈자루를 메고 행락객들이 놀던 곳을 따라 산을 누비며 이잡듯 모은 빈병은 어림잡아 8t트럭 20대분.
소주병은 20원,맥주병은 30원씩 인근 슈퍼마킷에 팔아 한푼도 손대지 않고 꼬박꼬박 저축해 모은 2백여만원을 명절·연말때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왔다.
해마다 펼쳐지는 방송국의 심장병 어린이돕기운동·자선바자 등 각종 불우이웃돕기 운동에도 한번도 빠짐없이 적은 돈이지만 보태왔고 실직한 동료의 부인이 출산후 미역국을 끓이지 못해 애태울 때는 몇달간 모은 5만원을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야근·잔업 합쳐 한달에 6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 부모·처자·형제 등 7명의 식솔을 부양해야만 하는 풍족하지 못한 살림의 박씨가 이같이 쉽지 않은 길에 나서게 된 것은 83년께 금정산 계곡에서 어린 소녀가 깨진 병에 발을 다쳐 피를 흘리는 것을 본뒤부터.
『그 소녀를 업고 병원으로 뛰면서 그렇게 안타까울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새벽 산에 버려진 깨진 병과 함께 빈병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몇년,박씨는 『단순히 빈병을 치울 것만 아니라 모아서 보람있게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 궁리하던중 빈병값을 쳐주기로 한 88년 정부 발표를 보고 병을 팔아 나보다 딱한 이웃을 돕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박씨가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행락객을 비롯,주변에서 그를 정상인으로 보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갸륵한 뜻이 점차 알려지면서 격려와 함께 미리 빈병을 모아놓는 등 흐뭇한 정성도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향인 경북 영천에서 중학교만 졸업한 뒤 일자리를 찾아 80년 부산으로 간 박씨는 처음엔 주차장에서 차닦는 일을 하다 83년 3월 부산시 덕포동 신발제조업체인 국일에 취직했으나 88년 이 회사가 도산한후 지금의 회사로 옮겨 일하고 있다.<부산=김관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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