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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자유 신성 재확인/형소법 3백31조 위헌결정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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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체포·구속은 영장에 의해서만 가능/“중형 구형후 보강수사” 관행 바뀔듯
헌법재판소가 24일 10년이상의 형이 구형된 피고인이 무죄판결 등을 선고받더라도 즉시 석방될 수 없도록 한 형사소송법 331조 단서규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것은 피고인의 신체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어떠한 이유로도 침해될 수 없다는 점을 헌법적 차원에서 재확인한 것이다.
이번 결정은 또 체포·구속·압수·수색은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영장주의의 대원칙」을 강조한 것으로 검사의 구형량에 따라 석방여부가 판단됨으로써 헌법상의 적법절차가 무시돼온 관행에 제동을 거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당장 피부로 느끼게 될 가시적인 변화로는 현재 1,2심에서 무죄판결 등을 선고받고도 중형이 구형됐다는 이유로 석방되지 않은 피고인들이 즉시 석방될 수 있게된 것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국민의 법감정을 이유로 과도하게 높은 형량이 구형되거나 수사의 편의를 위해 일단 중형을 구형한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보강수사를 벌이는 관행도 불가피하게 바뀔 전망이어서 형사피고인의 인권이 크게 신장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규정의 대표적인 피해자는 90년 서울 오류동 소망비디오 모녀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돼 살인혐의로 구속됐던 진모군(당시 19세)을 꼽을 수 있다.
진군은 서울지법 남부지원에서 증거불충분 및 고문에 의한 자백 등 임의성이 문제가 돼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검사의 구형량이 무기징역이어서 이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될 때까지 1년여동안 풀려나지 못했다.
당초 이 단서규정의 취지는 중형이 구형된 피고인들은 하급심 판사가 오판을 할 경우 풀려난 뒤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높다는 판단에 따라 이로 인해 빚어지게 될 상급심재판의 차질을 방지하는데 있었다.
그러나 검사의 구형을 사건의 중대성을 판단하는 일률적인 기준으로 삼거나 불확실한 오판의 가능성만으로 피고인을 석방하지 않는 것은 피고인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과잉입법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 위헌결정의 기본취지다.
지난 5월 하모군(16)사건과 관련해 이 규정에 대한 위헌심판을 제청한 서울형사지법 합의25부(재판장 양삼승부장판사)도 제청 이유를 통해 『피고인의 인신구속결정권이 법관에게 있는데도 검사가 판결효력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고 사법권 독립에 어긋난다고 주장했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형사소송법 96조에 「법원은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 직원으로 보석을 허가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으므로 문제의 단서규정이 반드시 법관의 권한을 침해한 것은 아니다』고 맞서왔었다.
검찰은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김보은양(21)의 경우 2심에서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도 구형량이 징역 12년이라는 이유로 즉시 석방되지 않았지만 법원의 직권보석으로 풀려난 사실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헌재의 이번 결정에 대해 『피고인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해온 대표적인 독소조항이 사라지게 된 것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매우 바람직한 일이며 국민기본권 신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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