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40만t 선적 시작 … 대북 지원 재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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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부는 26일 북한이 핵폐기 합의를 지키지 않아 미뤄 온 40만t의 쌀 지원을 30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브리핑에서 "국내산 쌀 15만t과 외국산 25만t을 보낼 예정"이라며 "수송비를 포함해 1649억원이 남북협력기금에서 투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쌀 차관에 이어 각종 대북 지원사업을 본격화할 움직임이다.

북한은 그동안 쌀 차관 유보에 반발해 1일 서울에서 열린 21차 남북 장관급회담을 결렬시키고 남북 대화채널을 가동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우리 정부로선 쌀 지원을 카드로 삼아 북핵 해결을 위한 2.13 합의 이행을 압박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쌀 지원을 유보했다가 재개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도 노출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쌀 지원 유보.재개의 원칙과 기준을 명확히 하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흔들린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정 장관은 14일 "쌀 지원 재개는 국민이 납득할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쌀 지원 재개'로 선회하고도 그 판단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 차관은 "정부가 하는 일이 여론과 괴리가 있어도 필요할 때는 먼저 추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핵시설 폐쇄를 지켜본 뒤 쌀을 줘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통일부의 조급증이 다시 도졌다"고 비판했다. 대북 정책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는 얘기다.

고위 당국자의 부적절한 언행도 지적된다. '쌀 제공이 어렵다'며 1일 북한 대표단을 돌려 보낸 이재정 장관은 이틀 뒤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그래도 쌀은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남겼다.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서 결정한 정부 방침에 대해 주무 장관이 뒷전에서 다른 말을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장관은 이틀 뒤 국회 답변을 통해 "(쌀 지원을 유보한) 노 대통령과 저의 뜻은 같다"고 말했다.

쌀 지원 여부를 둘러싸고 외교안보 라인의 갈등도 표출됐다. 통일부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한.미 공조를 위해 '쌀 지원을 유보하자'고 건의한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의 손을 들어줬다"는 관측이 끊이지 않았다. 또 지난주 평양을 전격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의 행보를 사전에 통보받지 못해 신언상 차관이 공개적인 유감표명을 하는 사태까지 있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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