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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족 이젠 「검찰수사」걱정 울산/14대 대선 개표하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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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부산시민 일찍귀가 밤새 불야성/광주 개표종사원 “집에 가고싶다”/“부정지시 수신우려 이어폰 빼라”
○거제향우회 축제무드
○…김영삼후보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시민들은 김 후보의 대통령당선을 반기며 가정과 직장에서 선거결과를 화제로 삼는 등 들뜬 분위기.
특히 김 후보의 고향인 거제도 재부산 향우회사무실(중앙동부산데파트)과 모교인 경남고 동창회사무실(초량동)은 아침 일찍부터 회원들이 몰려들어 온통 축제분위기.
대부분의 시민들은 18일 밤 집에서 TV개표방송을 보기 위해 서둘러 귀가,가족들과 밤을 지새며 30년만에 문민대통령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개표과정을 시청. 이 때문에 남천·구서·하단동 등 아파트 밀집지역은 날이 샐 때까지 불야성을 이뤘으며 시내 주요 간선도로와 서면·남포동·남천동 등 중심가도 18일 오후 8시쯤부터 한산한 모습.<부산>
○만취의원 개표소 소란
○…김영삼후보가 선두를 달리고 있던 18일 오후 10시쯤 김 후보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 서구개표소인 부민국교에는 이 지역 출신 민자당 곽정출의원이 만취돼 들어와 민자당 출신의 김허남 부산시의원(서구3)과 서로 고함을 지르며 언쟁을 벌여 눈총.
YS의 선전에 고무된 듯 참관인석에 앉아 『서구에서 전국최고득표를 못하면 의원직을 그만 두겠다』고 큰소리로 떠들던 곽 의원은 김 시의원이 들어오자 대뜸 『바르게살기운동 하려면 똑바로 하라』며 고함을 질렀고 김 시의원도 이에 맞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잠시 개표업무가 중단되는 소란을 연출. 곽 의원은 영문을 묻는 기자들에게 『YS가 선거운동하라고 격려금까지 주었는데 자기 동네인 서구 암남동의 투표율이 제일 낮았다』며 김 시의원을 비난하다 40여분만에 당원들의 권유로 퇴장.<부산>
○“부산시민 해도 너무 해”
○…선거막판에 터진 「기관장모임」사건으로 부산지역에서도 김영삼후보 표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던 민자·국민 등 각 정당은 김 후보가 압승하자 각 정당간에 희비가 크게 교차.
부산지역에서 당초 김영삼후보가 80% 가량 득표할 것으로 예상했던 민자당 부산시지부는 막판에 터진 「기관장모임」사건으로 『혹시 김 후보 반발표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전전긍긍했으나 김 후보 표가 쏟아지자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
반면 부산지역에서 40% 이상 득표할 것이라고 장담했던 국민당 부산시지부는 정주영후보가 김대중후보보다 뒤진데다 10% 득표에도 실패하자 『부산시민들이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며 초상집 분위기.
민주당 부산시지부도 『이번에는 바꿔볼 분위기가 성숙됐다』며 김대중후보의 선전을 기대했으나 10%선 득표에 그치자 『역시 김 후보의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낙담하는 분위기가 역력.<부산>
○박 후보 선전에 놀라움
○…개표 30%를 넘으면서 김영삼후보와 김대중후보의 표차가 1백여만표로 벌어지자 민자당 대구시지부는 무척 안도하는 분위기.
민자당은 당초 대구지역에서 45% 득표를 목표로 할 정도로 정주영후보의 세확장에 내심 골머리를 앓아왔으나 김영삼후보가 전체적으로 60%내외의 득표수준을 지킨데다 김복동의원의 대구동갑지구당과 박철언의원의 수성갑지구당 등에서도 정주영후보를 크게 따돌리자 민자당 관계자들은 『대구민심은 역시 소신과 의리를 소중히 하는 것 같다』고 분석.
민자당 관계자는 『정주영후보가 의외로 적게 표를 얻은 것에 대해서는 그동안의 세확장이 실속없는 거품의 반증』이라면서도 박찬종후보의 선전에는 다소 놀라움을 표시.<대구>
○현대직원 허탈감 빠져
○…국민당 정주영후보가 예상외로 부진하자 그동안 정 후보를 위해 조직적인 선거운동을 벌였던 울산 현대계열사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
이번 대선에서 구속까지 되는 위험부담을 안고 정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뛴 대부분의 현대가족들은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속에 앞으로 대선패배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몰라 전전긍긍.
회사 관리이사가 구속되고 대표가 수배된 현대중장비를 비롯해 회사 돈이 국민당 선거자금으로 흘러들어간 것이 확인돼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현대중공업 등 대부분 현대계열사들은 앞으로 남은 검찰의 수사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관심을 집중.
시민들도 『세계굴지의 대기업을 개인의 선거운동에 이용하다 실패한 이후 돌아올 영향은 엄청날 것』이라고 걱정하면서도 그동안 대선때문에 시끄러웠던 갖가지 현상들이 조용해질 것에 오히려 반가워하는 표정들.<울산>
○“지역감정 아직도 남아”
○…김대중후보의 당선을 고대하며 밤새 뜬눈으로 개표과정을 지켜보던 김 후보의 고향마을 하의도 주민들은 19일 오전 2시를 지나면서 김 후보의 패배가 확실한 것으로 드러나자 안타까워하면서 무척 허탈해 하는 표정들.
주민들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정주영후보의 활약이 대단해 여권표를 많이 흡수해줄 것으로 믿었으나 결과가 너무 부진해 김 후보가 1위를 따라잡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나름대로 패인을 분석.
그러면서도 『아직 지역감정이 많이 남아있어 이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호남출신 대통령을 영원히 보기 어려울지 모른다』고 이구동성.
하의도 주민들은 『새 대통령은 자신이 내건 공약을 충실히 이행해야 할 것』이라며 『특히 이번 선거후 정치적 무력감에 빠져들 것으로 보이는 호남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의도>
○착잡한 심정으로 진행
○…광주·전남지역의 유권자들은 표를 몰아준 김대중후보가 패배하자 너 나 할 것없이 모두 침통한 분위기.
개표소 투표함을 개봉할 때마다 김대중후보의 표가 쏟아짐에도 19일 새벽부터 김영삼후보쪽으로 대세가 기울어지자 구경나온 일반시민들뿐 아니라 민주당·국민당 관계자들마저 자리를 많이 떠 개표종사원들만 착잡한 심정으로 개표를 진행.
광주시 북구청회의실에 마련된 광주북갑 개표소에서 개표를 하던 김모씨(34·교사)는 『개표작업을 그만 두고 그냥 집에 가고 싶을 정도』라고 토로하고 『지역주민들이 집단적으로 느끼는 무력감과 허탈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하기도.
광주시 쌍촌동 등 아파트 밀집지역에서는 18일 밤 거의 모든 가구가 불을 밝히고 TV로 개표상황을 지켜 보았으나 김대중후보의 패색이 짙어지자 19일 새벽에는 하나 둘씩 불을 끄기 시작.<광주>
○전국개표 결과에 궁금
○…서울 원효로3가 체신공무원교육원 강당에 마련된 서울 용산구 개표소에는 개표종사원 상당수가 전국개표상황을 듣기 위해 리시버를 꽂고 라디오를 청취하다 『외부에서 무선으로 개표 부정시비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일부 참관인들의 이의제기로 지역선관위측이 이어폰을 빼라고 지시.
그러나 개표가 아침까지 계속되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일부 개표요원들은 다시 몰래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듣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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