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긴 28일(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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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투표를 끝내고 돌아서는 유권자 입장에선 특히 이번 선거운동기간이 너무나 길었다는 느낌이다. 선거일 공고로부터 28일간의 선거운동 기간이 왜 이렇게 길게만 느껴지는가. 말이 4주지 사실상 1년내내 선거열풍에 시달린 탓인가,아니면 치열한 쟁점없이 음해·비방·금권선거 등의 단어만을 너무나 귀따갑게 들은 탓인가.
밤이 길면 꿈이 많은 법이어서 큰 쟁점없이 긴긴 시간을 보내자니 선거의 본래 의미를 벗어나 남을 헐뜯고 비방하는 일이 많아지고 돈을 뿌려야 할 시간도 길어지는 것임을 이번 선거를 통해서 모두가 확인했을 것이다.
공직자든,기업가든 박빙의 선거향방에 촉각을 세우며 오로지 누가 당선되느냐에 정신팔고 눈치보면서 해야할 일을 미루고 세월을 허송했을 것이고,유세 동원으로 일손을 빼앗긴 기업도 많았을 것이다.
식당에서나,망년회 모임에서나 하루도 빠짐없이 누가 당선되느냐로 화제는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이 났다. 심지어 가정에서까지 부부간에 누구를 찍느냐로 말다툼이 일어나기도 하고 부자간에 소리높여 말다툼했다는 사례도 들린다.
87년 대선법개정때 여당이 20일,야당이 40일을 주장해 그 중간선인 30일로 타협했고 이번 개정시에도 21일 안이 나왔지만 결국 단 이틀을 줄인 28일이 됐다. 권위주의 시절에야 모든 언로와 정보가 집권당 일변도로 돼있어 야당이 국민앞에 직접나서서 할 말도 많고 고발할 일도 많았으니 운동기간이 길수록 좋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이젠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기간이 길면 길수록 선거비용만 늘어날 뿐임을 각 정당이 절감했을 것이다.
다음 대선에선 잊지 말고 선거운동기간을 적어도 3주 21일이내로 단축해야 한다. 단축에 따르는 문제점은 TV유세와 TV토론으로 보완하면 된다. TV토론은 선거기간을 단축하고 선거비용과 국력낭비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기능을 지녔음에도 이번 대선에선 이를 활용하지 못했다. 「후보들간 합의에 의한 TV토론」이라는 합의사항을 의무사항으로 고친다면 TV토론을 회피할 근거도 없어지게 된다. 선거가 축제라면 축제는 짧을수록 좋다.<권영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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