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프리즘] 선풍기 질식사 이론적으론 설명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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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남자가 여인숙의 좁은 방에서 선풍기를 켜놓고 자다가 사망했다는 사건이 이달 초 보도됐다. 해마다 유사한 사건이 신문ㆍ방송 뉴스를 장식한다. 지난해 소비자보호원은 선풍기나 에어컨을 틀어놓고 자다가 질식사한 것이 최근 3년 동안 20건이라고 발표했다. 친절하게도 “선풍기나 에어컨을 틀 때는 방문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많은 사람이, 심지어 의사들도 선풍기를 켜놓고 자면 사망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필자도 중학교 시절 잠잘 때 선풍기를 끄거나 다리에만 바람이 닿도록 조정했으니, 이 속설의 기원은 40년은 족히 될 듯하다.

그런데 이런 기사는 우리나라에만 있다. 선풍기가 작동하는 데 산소를 소모하지 않으며, 문을 닫아도 공기는 소통한다. 따라서 선풍기 때문에 질식하는 일은 없다. 더워서 문을 열어둘지언정 선풍기 때문에 산소가 부족해질까 걱정해서 문을 열어둘 필요는 없다. 바람 때문에 코 앞의 압력이 낮아져 공기를 들이쉬지 못하므로 질식한다는 정교한(?) 논리도 있다. 이 논리가 사실이라면 바람이 세게 불 때나, 달리는 차량에서 고개를 내밀 때 질식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고는 없다. 따라서 굳이 선풍기 바람이 얼굴에 닿지 않도록 애쓸 필요가 없다.

선풍기 때문에 질식하지는 않지만 저체온증(低體溫症)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항온동물이므로 체온이 섭씨 26도 이하로 낮아지면 생존하기 어렵다. 선풍기 바람이 체온을 낮추기 때문에 이런 일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원하게 느끼는 체온 강하는 체표 온도이고, 저체온증은 몸속 온도(심부 체온)가 낮아졌을 때에 생긴다. 보통의 경우 선풍기를 켜놓아도 체표 온도는 낮아지되 몸속 온도는 별로 낮아지지 않는다. 몸속 온도가 낮아지면 웅크리거나 몸을 떨어야 하므로 잠을 깰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선풍기 저체온증 사망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다만 체온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 예를 들어 갓난아이나 영ㆍ유아, 노인, 병약자, 술이나 약물에 취한 사람에게는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선풍기를 켜놓고 자다가 사망하였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대부분은 기왕증(旣往症ㆍ환자가 과거에 경험한 질병)인 심장 질환이나 뇌혈관 질환 또는 급성 알코올 중독 등으로 사망했는데 우연히 선풍기나 에어컨이 켜져 있었을 뿐이다. 사망원인은 그런 기왕증이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선풍기 사망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여름철에 흔히 듣는 잘못된 속설이 또 있다. ‘자동차 안의 어린이 질식 사고’다. 이것은 ‘자동차 안 열사병’이 맞다. 여름철 뙤약볕에 자동차를 세워두면 차 안 온도는 1시간 만에 60~70도로 올라간다. 사막의 기온이 50~60도인 점을 생각하면,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온도다.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지 못하는 어린이는 뜨거운 차 안에서 열사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질식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자동차 창문을 조금 열어두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노파심에서 선풍기를 끄고 자는 것은 누구에게도 피해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름철에 자동차 안에 어린이를 방치하는 것은 창문을 조금 열어두더라도 살인행위가 된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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