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고비 넘긴 「유럽통합」/덴마크 예외인정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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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실패는 공위”공감대 퍼져 합의도출
지난 12일 영국 에든버러에서 막을 내린 제49차 유럽공동체(EC)정상회담에서 회원국 정상들은 ▲덴마크 문제 ▲EC예산안(93∼99년) 심의 ▲회원국 확대 등 다양한 난제를 놓고 진통을 거듭한 끝에 가까스로 합의도출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난파직전의 위기까지 몰렸던 유럽통합은 한 고비를 넘겨 새로운 출발을 모색할 수 있게됐다.
두가지 속도의 유럽통합론,영국과 덴마크를 제외한 10개국 통합론이 제기될 정도로 난항을 겪었던 이번 회담이 결국 극적타결로 끝난 것은 「실패는 곧 공위」을 의미한다는 회원국 정상들의 위기의식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주요 현안에 대한 타협에 실패,유럽통합이 깨지는 사태가 올 경우 이는 모두에게 재앙이라는 분위기가 회담을 지배했다는 지적이다. 최후까지 가장 큰 문제로 논란을 빚은 예산안 문제해결을 위해 당초 예정시한을 몇번씩이나 넘겨가며 토요일밤 늦게까지 회의를 계속,결국 타협에 성공한 것이 이러한 분위기를 잘 말해주고 있다.
국내 정치적 위기와 관련,이번 회담의 성공을 위해 필사적 노력을 다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영국의 존 메이저총리는 에드버러회담의 성과를 ▲덴마크 문제해결 ▲EC예산안 확정 ▲EC통합의 민주성 제고 ▲회원국 확대교섭 개시 ▲EC차원의 경기부양책 확정 등 크게 5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유럽통합의 장래와 관련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덴마크 문제에 대해 EC정상들은 덴마크정부의 요구를 대폭 수용,마스트리히트조약에 규정된 ▲EC시민권 ▲통화단일화 ▲공동방위정책 ▲공동 내무·사법정책 등 4개분야로부터 빠지는 예외를 인정해줌으로써 덴마크정부는 내년 5월 마스트리히트조약 비준안을 다시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게 됐다. 마스트리히트조약 자체에는 일체 손을 대지 않은채 법적으로 국제협정의 효력을 갖는 별도의 수뇌회의 결정형식으로 덴마크에 대해 예외를 인정해주면서도 EC정상들은 「이 결정은 오로지 덴마크에만 적용되고 기존 또는 신규회원국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못박음으로써 조약내용을 둘러싼 더 이상의 시비가능성에 미리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이미 마스트리히트조약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통화단일화에 대해 영국에 예외를 인정한데 이어 덴마크에 대해서까지 예외를 확대함으로써 일괄통합이라는 당초취지가 크게 훼손됐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이제 공은 다시 덴마크로 넘어가게 됐다. 덴마크정부가 이번에 마련된 해결책을 토대로 국민을 설득,다시 실시될 국민투표에서 비준안을 통과시키지 못할 경우 마스트리히트조약 발효는 무산되고 경제·통화동맹과 정치동맹을 골자로 한 원대한 유럽동맹 실현의 꿈은 깨지고 말 것이다. 특히 영국이 각국 정상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조약비준을 덴마크의 비준 이후로 연기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내년 4∼5월께 재실시될 덴마크 국민투표는 유럽통합의 성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번 회담이 끝난 직후인 13일 0시 무렵에 가진 폐막회견에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덴마크와 영국이 조약비준에 실패하더라도 독·불 두나라에 8개국을 더한 10개국만으로 통합을 계속 추진한다는 각국 정상들의 의지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고 분명히 함으로써 소규모 통합 가능성을 여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비록 이번 회담으로 위기에 처했던 유럽통합이 중요한 한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유럽통합 전선에 드리웠던 먹구름이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닌셈이다.<에든버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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