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촌 소재 「삶의 현장」재창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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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한국화가 이상원씨가 환갑을 3년 앞두고 두번째 개인전을 4일부터 13일까지 조선일보 미술관((731)8222)에서 갖는다. 장지에 수묵을 토대로 담채와 오일을 혼용하여 어촌의 짙은 음영을 극세필로 그린 1백호 이상의 대작 46점을 선보인다.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그의 작품을 보면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렇게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을 지칠 줄 모르고 어떻게 해왔을까 하는 감탄이 나온다. 6년만에 두번째 개인전을 갖게된 것도 한 작품을 그리는 데만 4∼5개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삶의 잔해를 통해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망가진 그물과 마대, 갯벌에 버려진 선박, 잡초만 무성한 농가 등을 단순히 재현한 것이 아니라 극명한 명암의 대비와 극사실적 기법으로 냉엄한 삶의 현실을 재창조한 그의 화면에는 젊은 작가들에게서도 흔히 발견할 수 없는 치열한 실험정신과 진지함이 담겨있다.
51세때 가진 첫 개인전에서는 자동차 바퀴자국, 버려진 신문 등을 소재로 했으나 이번에는 어촌의 잔해를 소재로 꼭 알리고 싶은 부분만 대담하게 클로스업 시키는 등 원숙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다. 젊은 시절 영화관의 간판과 유명인사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회화의 기초를 닦았다.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있는 안의사의 영정은 그가 그린 숱한 초상화 가운데 하나다. 40세 되던 75년 23회 국전 때 처음으로 공모전에 응모해 입선했고 이후 동아미전 미술상, 중앙미전 특선 등을 수상했다. 중앙미전 특선작품은 자동차바퀴에 짓눌린 신문을 리얼하게 묘사한 것인데 언론탄압을 비판했다는 혐의로 신군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었다. 『전시회가 끝나면 새로운 소재를 찾아 세계여행을 떠날 계획입니다.』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우물 속의 개구리는 될 수 없다며 이씨는 꺼질 줄 모르는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미술평론가 윤범모씨는 『구태의연한 산수화 속에 안주할 나이에 인간성 상실의 현장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고 지나간 세월의 잔해들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이씨의 실험정신은 높이 살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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