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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에 승부조작 담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최근 프로축구경기에서 특정 팀의 우승을 도와줄 목적으로 코치가 선수에게 고의로 껴 줄 것을 사주하는 등 담합에 의해 승부조작을 기도한 충격적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축구계에 파문이 크게 일고 있다.
지난 14일 동대문구장에서 벌어진 92프로축구정규리그 28주 째 일화-대우경기에 앞서 대우 조광래 감독대행은 일화 이장수 코치의 부탁을 받고 평소 잘 따르던 수비수 조덕제를 따로 불러 일화의 공격을 적극적으로 차단하지 말 것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조덕제는 고의적으로 실책을 잇따라 범하는 등, 조감독대행의 주문을 「충실히(?)」이행했다는 것. 실제로 이 경기에서 일화는 후반에만 무려 8차례나 GK와 단독으로 맞서는 결정적인 찬스를 잡았으나 결국 한 골을 뽑는데 그쳐 1-1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다.
이같은 사실은 평소답지 않은 조의 플레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동료들이 게임을 마친 후 성토하자 다급해진 조가 실토함으로써 표면화됐다.
파문의 확산을 우려한 대우 측은 조감독대행이 단순히 농담으로 조에게 말을 건넨 게 와전된 것일 뿐이라고 해명, 일단 급한 불은 끌 수가 있었다. 그러나 파문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축구계에 확대되자 사건당사자인 조감독대행이 지난 25일 코칭스태프를 긴급소집, 이같은 사실을 일부 시인하고 이번 사태의 조기수습을 위한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임에 참석한 대우 정해원 코치에 따르면 조감독은 이 자리에서『일화 이장수 코치와의 인간관계를 고려, 과격한 태클 등 지나친 플레이는 하지 말아 달라는 주문이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사전 담합 설을 부인했으나 승부담합기도는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일화 이 코치는 조감독대행의 연세대 1년 후배로 평소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승부조작기도는 결코 감독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어서 구단 고위관계자들이 연루됐음이 분명한 것 같다는 게 축구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이럴 경우 박종환(박종환)감독의 징계로 막판 위기에 몰린 일화는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짓는 대신 대우는 일화로부터 선수트레이드나 드래프트에 따른 선수확보에 반대급부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양 구단간에 합의가 이뤄졌을 공산이 크다는 추측마저 나돌고 있다.
이날 경기는 사실상 일화의 우승을 확정짓는 최대의 고비였다. 당시 상위4개 팀간의 선두다툼이 치열해 3게임을 남기고 승 점 2점차로 2위 포철에 앞서 있던 일화로서는 이 경기에서 이길 경우 거의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한판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1·1로 비기고 말아 당초 일화의 뜻대로는 이뤄지지 않았으나 대우와의 사전 담합기도는 게임전후에 걸쳐 여실히 드러나고 있어 파문이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우는 이 게임에 앞서 시즌전반에 걸쳐 후보명단에도 오르지 않았던 김종부를 스타팅멤버에 포함시키고, 후반 13분에는 잘 뛰던 심봉섭을 빼고 무명의 안광호를 교체 투입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선수용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이승호 대우축구단장은『선수용병은 전적으로 코칭스태프의 고유권한이며 일화와의 경기가 사전담합에 의해 치러졌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사전 담합 설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그러나 시즌도중 감독교체의 진통을 겪은바 있는 대우는 이번 사태와 관련, 몇몇 코칭스태프(정해원·이춘석)가 사의를 표명하는 등 구단프론트에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어 또다시 호된 내부진통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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